5th
아, 내가 무서워 보이나?내가 너무 겁을 줬나?
내 말투가 생각보다 무겁게 들리는 건가?요즘 들어 이런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처음부터 내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한마디씩 했다.
“애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한 번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두 번 들었을 때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비슷한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작은 말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산처럼 느껴졌다.
정말 내가 문제인가?
나는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는 건데.
내가 아이에게 그렇게 무서운 아빠인가?
마음을 한번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하던 러닝을 마치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았다.
명상을 하며 며칠 전의 일을 천천히 되돌려봤다.
몇 월 며칠 몇 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딸과 함께 먹을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정성을 들였다.
아이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평소에는 밥투정을 별로 하지 않던 아이가 그날따라 자꾸 먹기 싫다고 했다.
처음에는 좋게 말했다.
“조금만 먹어보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나는 다시 말했다.
“밥 먹을 때 그렇게 투정하는 거 아니야.”
나름대로 여섯 살 아이의 수준에 맞춰 설명한다고 했다.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
왜 먹기 싫다고 무조건 안 먹으면 안 되는지.
내가 알고 있는 생각들을 끌어모아 최대한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도 아이가 그대로 따라와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달랐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설명했으니 조금은 따라줬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아졌다.표정도 굳었던 것 같다.
“밥 먹어.”
아이는 나를 한번 쳐다봤다.그리고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 순간에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런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알아들은 게 아니라,그냥 아빠가 무서워서 숟가락을 든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그 모습을 본 동생이 다가왔다.
“오빠, 애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아무 말 없이 동생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면 애가 너무 무서워할 것 같아. 조금 바꿔보는 게 어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말도 아니었다.
아이를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아니, 너는 왜 갑자기 와서 그래!”
말하고 나서도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몰랐다.
동생에게 화를 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순간적으로 욱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 하고 있었으니까.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먼저 튀어나왔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모르면서.’
‘잘하고 있는 건 하나도 안 보고 왜 이것만 보고 나를 판단하지?’
‘나도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의 말보다 그 말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에게 화가 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마침 동생이 그 순간 나타났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동생의 말을
“조금 무서워 보여.”라고 들은 것이 아니라,
“너는 좋은 아빠가 아니야.”라고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방어했던 것은 아닐까.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 사과해야겠다.
동생은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이야기해준 것뿐인데.
나는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 의도가 좋은지 나쁜지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내 의도는 내가 알지만, 내 모습을 보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는 것.
특히 아이에게는 더 그럴 것이다.
나는 ‘교육하고 있는 아빠’라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냥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빠’일 수도 있다.
이래서 내가 명상을 좋아하면서도 가끔 싫다.
하나를 들여다보면 또 하나가 나온다.
그걸 넘으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모르는 내가 나타난다.
답답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조금씩 과거의 나에게서 빠져나와 현실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힘들어도 이걸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어느 날이었다.
딸아이가 내 앞에서 말했다.
“아빠, 사랑해.”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아이의 ‘ㅅ’ 발음이 귀에 들어왔다.
사람.
사랑해.
몇 번을 들어보니 시옷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유가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몇 번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님, 아이가 발음 교정을 한번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원래 처음부터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거고.
사람마다 자기 속도가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몇 달 동안 계속 듣다 보니 나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정말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부모라서 아이를 너무 좋게만 보고 있는 건가?
선생님이 아이를 보는 시선과 내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아이를 믿는다는 말로 무바카라임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바로 병원이나 발음 교정 기관을 찾아가는 것도 마음 한편에서는 걸렸다.
그곳에 대한 거부감이나 편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의문 때문이었다.
앞으로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괜찮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라는 판정을 받아야 안심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나도 부모로서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먼저 공부해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고 아는 지인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관련된 내용도 찾아봤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의 발음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아이와 놀이하듯 발음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사!”
“사!”
“람!”
“람!”
둘이 마주 보며 웃기도 했다.
잘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날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날도 있었다.
집중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같은 발음을 몇 번씩 반복했고,
아이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니, 조금만 더 해보자.”
“아까 했잖아.”
“다시 한번.”
아이를 기다리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속도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속도로 아이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애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하기 싫어하는 거 아니야?”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총을 한 발씩 맞는 것 같았다.
또 시작이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데.’
‘왜 노력은 안 보고 이것만 보는 거야.’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러는 걸까?
아이의 발음을 좋아지게 하려는 걸까.
아니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말로는 계속 아이의 속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의 체력보다 결과를 먼저 보고 있었다.
‘얼른 좋아져야 하는데.’
‘선생님도 좋아졌다고 해야 하는데.’
‘내 방법이 맞았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교육의 중심에서 아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내 불안과 내 욕심이었다.
이렇게 계속하면 발음이 좋아지는 대신,
아이와 내 사이에 금이 생기는 건 아닐까?
발음 하나 좋아지게 하려다가 아이가 나를 무서워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부했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보다 오래 공부하고,
수많은 아이를 만나고,
그 문제를 전문적으로 살펴본 사람의 눈을 빌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판단을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도 없다.
내가 판단하되,
내 판단만 믿지는 않는 것.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리는 것.
어쩌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아는 능력보다 그런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먹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고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아이의 발음은 평균적인 범위였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현재로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그 말을 듣는데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공부하면서 판단했던 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다행이다.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지는 않았구나.
그제야 내가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이의 발음이 늦는 것이 무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 판단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병원 안의 딱딱하고 차가운 공기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때 달달한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솜사탕 가게가 있었다.
‘하나 사줄까?’
생각하는 순간,
내 생각보다 딸아이의 발걸음이 빨랐다.
아이는 가게 창문에 붙어 있는 토끼 모양 솜사탕을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아빠, 나 저거 사줘.”
그날만큼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 사자.”
솜사탕을 하나 사서 아이 손에 쥐여줬다.
아이는 한입 먹더니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었다.
“아빠, 맛있어.”
나는 그 작은 손을 잡고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들고 있는 솜사탕을 바라봤다.
이상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아이의 마음도 저 솜사탕 같지 않을까.
아직은 쉽게 눌리고,
조금만 힘을 줘도 모양이 변하고,
너무 세게 움켜쥐면 금세 망가질 수 있는 마음.
그렇다고 평생 유리상자 안에 넣어 보호할 수도 없다.
언젠가는 혼자 넘어져야 하고,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하고,
실패도 해야 하고,
자기 힘으로 세상을 견뎌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 대신 세상을 막아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가 조금씩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세상에서 힘들고 지쳤을 때 다시 돌아와도 되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그날 나는 ‘좋은 아빠’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좋은 아빠라면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고,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준비시켜주는 사람.
물론 그것도 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안전함.
아이가 세상에서 무서운 일을 겪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잘못했을 때 혼날까 봐 숨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조차 찾아와 말할 수 있는 사람.
밖에서 상처받고 돌아왔을 때
“아빠한테 가야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을 처음 설명해주는 번역기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항상 안전하다고 거짓말해서도 안 되고,
세상이 무섭다며 겁을 줘서도 안 된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에게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무엇은 괜찮으며,
넘어졌을 때는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를
아이의 언어로 하나씩 번역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러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아이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내가
아이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생각을 하니 처음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굳어 있던 내 얼굴.낮아진 목소리.
말없이 숟가락을 들던 아이.그리고 동생의 말.
“오빠, 그렇게 하면 애가 너무 무서워할 것 같아.”
그제야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나를 공격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을 알려준 말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낼 것이다.
답답할 때도 있을 것이다.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려 할 것이고,
때로는 또 내 욕심이 앞설지도 모른다.완벽한 아빠가 될 자신은 없다.하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누군가 내 모습을 이야기해주면 불편하더라도 한번 돌아보는 것.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다른 시선을 빌리는 것.그리고 잘못했다면 아이에게도 사과하는 것.
부모가 되는 데에는 특별한 시험도 자격증도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아이를 낳고,어느 날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불렸다.
부모가 되는 것은 그렇게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아이 하나를 가르치려다가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기다리는 법.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법.
도움을 받는 법.사과하는 법.
그리고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사랑하는 방식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나는 이미 아빠가 되었지만,아직 좋은 아빠가 무엇인지는 배우는 중이다.
어쩌면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도 계속 배워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완벽한 아빠가 되는 것보다,어제보다 조금 덜 무서운 아빠가 되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한 목표인 것 같다.솜사탕을 먹던 아이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아빠, 빨리 와.”
“어, 갈게.”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다시 잡았다.그리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조금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