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한마디.

4th

by칸테

4장. 딸의 한마디

이런저런 사건과 상황을 지나오다 보니 딸아이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

시간이 갈 것 같지 않았는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아이를 보면 세월이 흐르긴 했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딸아이와 함께 있는 날이다.

쉬는 날이기도 해서 아이와 어디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나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나는 원래 밖에서 돌아다니며 노는 것보다 집에서 바카라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해도, 연애를 할 때도, 전 와이프가 어디를 가자고 해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가 되고 나니 이상하게 내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아이는 아니니까.

내가 하지 않던 것들을 하고, 가지 않던 곳을 찾아보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고 있으면 가끔 신기했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나도 누군가를 만나면서 변하고 있었다.

이게 성장이고 성숙일까.

아니면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일까.

어쩌면 이것도 내가 몰랐던 나의 한 모습인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대전에 있는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워낙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아이에게는 즐거우면서도 나에게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장소를 고른 셈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 아쿠아리움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런 곳을 다 오네.’

아이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좋은 추억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따뜻한 감정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아이대로 신기한 것을 찾아다녔고 나도 나대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눈앞을 천천히 떠다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와 놀러 가지 못하는 걸 미안해할 줄이야.’

살면서 놀지 못해서 아쉬웠던 적도 별로 없었고, 어디를 가지 못했다고 속상했던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이제는 아이와 어디를 가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함께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원래 내 안에 있었지만 꺼내본 적 없던 나를 아이가 하나씩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럴 때마다 높은 담장 하나를 넘은 것 같은 묘한 희열이 있었다.

별것 아닌 하루인데도 아이와 함께하면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아이의 존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아이가 말했다.

“아빠, 배고파.”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뭐 먹고 싶어?”

“돈가스.”

우리는 근처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나 혼자였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낯선 장소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도 좋아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사람 많은 곳에 가느니 그냥 안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으니 그런 것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돈가스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직 다섯 살이라 말이 능숙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와 대화하고 있으면 편안했다.

아이는 내 말만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표정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주변의 분위기도 느끼면서 온몸으로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대화가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

말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와 함께 있는 것.

그런 대화를 다섯 살짜리 딸과 하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잠시 후 돈가스가 나왔다.

아이에게 먹기 좋게 잘라주고 나도 한입 먹었다.

평소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나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맛있었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해 주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딸아이와 나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이 조금만 더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잠깐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나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과 경험을 가져다준 딸에게 오히려 내가 고마웠던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아이를 씻기고 같이 누웠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끝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딸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아빠, 할머니 보고 싶어.” 잠시 후 한마디를 더했다.

“고모도 보고 싶어.” 별것 아닌 말이었다. 정말 다섯 살 아이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서운했다. 몸이 살짝 경직되었고 생각도 잠시 멈췄다.

‘왜 내가 서운하지?’ 그러다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질투.

‘내가 지금 질투하는 건가?’ 딸아이를 길러주는 할머니와 고모.

평소에는 너무나 고맙고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었다.

그런데 딸의 한마디에 그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질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맙던 딸아이에게조차 순간적으로 미운 감정이 올라왔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아이는 금세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잠든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을 말했을 뿐인데, 나는 왜 서운했던 걸까.’

내가 아이에게서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 걸까.

할머니와 고모보다 내가 아이에게 못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내 아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분명 오늘 하루는 행복했다.

아쿠아리움도 갔고, 같이 밥도 먹었고, 많은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내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그런데 아이의 마음은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가 좋다고 해서 할머니가 싫어지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아빠를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고모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애초에 경쟁이 없었다. 경쟁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이런,,,

그 사실을 깨닫자 조금 부끄러웠다. 잠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질투를 잘하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질투할 정도의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 안에는 아이와 더 강하게 연결되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아이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아주 작은 소유욕도 숨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나를 더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할머니보다, 고모보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순위가 아니었다.

아이가 살아가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어른이 된 뒤에도 문득,

‘아빠한테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하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딸에게 사랑받는 방법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과,

그 사람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후자의 아빠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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