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식

3rd

by칸테

3장. 사랑의 방식

사랑의 방식 이름만 들어도 오묘하다.

지금 내가 하는 방식이 자신 있게 맞다고도 하지 못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방식이 누군가로 인해서 흔들리는 것 또한 못 참는 것도 사실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을 마치고 투박한 걸음으로 어떻게 딸과 대화를 해볼까 고민하며 나의 집으로 아닌 딸이 머물고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이것의 나의 하루 일상의 마무리이고, 행복이고, 또 하나의 과제였다.

나의 딸이지만 사랑을 주는 방식에서 항상 가족들과 보이지 않는 부딪힘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딸도 한 사람이고 나도 한 사람이고 모두들 각자 개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졌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보이지 않는 다툼을 해결하면서도, 딸아이에게

삶을 살아가는 법,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관찰을 하기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해하고 양보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나의 과제는 여동생이 내 딸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을 관찰하기로 시작했다.

관찰의 처음에는 정말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면서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돌을 던지면 반응하듯이 즉각적으로 제지하고 싶었고,

왜 그렇게 하는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 등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내가 상황과 처지가 도움도 받아야 하면서 여동생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작용하는 이상한 이 상황에서 나의 처신에 신경을 쓰는 동시에

딸아이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좀 무언가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그들이 아닌 나에게 말이다..

내 기준으로 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지금 여동생과 딸아이의 관계를 즉각적으로 해석하고 그들의

오묘하게 설계되어 있고 만들어진 관계는 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진 이미지 만을 보고 판단하고 아니라고만 하고 싶은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참을 인을 세 번 외쳤다.

그러고 다시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놀이, 딸아이에 대한 배려 없는 것 같은 행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 저렇게 하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지만, 참고 지켜보기로 했다.

“아~해봐 이거 먹어봐”

“맛있지!!”

그 모습을 볼 때 나는

“하.. 주는 건 좋은데 입에 묻은 거 바로 닦아줬으면 좋겠다.”

“머리는 감겨준 건가 왜 저렇지…”

“놀고 나면 손을 닦아줘야 되는데 왜 저렇게 방치하는 거지…”

하는 등 머릿속은 잔소리로 넘쳐났지만,

아이는 좋아하고 여동생도 좋아한다.

가끔은 내가 너무 오히려 인간답지 않게 키우려고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보게 되었다.

“우리 손녀가 너무 이쁘네 너무 똑똑하네 너무 잘하네”

저건 너무 과한 칭찬이 아닌가.. 너무 저런 식으로 칭찬을 하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좌절상황을 못 겪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불안감 정말 그럴 때마다 칭찬 좀 그만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런 식으로 엄마나 동생들과 부딪혀던 적이 많았던 경험이 있기에

딱 불이 집히기 직전에 멈추어야만 했다.

매번 고모들이 딸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오는 날이면

아이는 꼬질꼬질해지고 다음날이면 어디가 아프진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하.. 나는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일을 못하고,

그러지 않으면 내 옆에 없는 아이를 못 두는 불안함을 견뎌야 하는 상황

이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도움을 주는 가족들과 마찰이 크지 않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생각과 불안함을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내려놓아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과한 것일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물 쏟아지듯 한꺼번에 밀려오게 되었다.

이 느낌은 더 이상 참으면 언젠가 터져버린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에 의자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문뜩 뜬금없는 생각이 들어온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 그때였다. 나는 창조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창조는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반복과 동일성을 거부하고, 환경과 접촉하며, 자신의 선택에 끝까지 바카라임지는 행동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만 있었지 바카라임지며 행동하는 것은 없었구나…

내가 딸아이에게 행동으로 하기보다 말로만 하고 있었고 생각으로만 하고 있었고 그들이 하는 영역을 나의 영역으로 지배하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였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나보다 내 가족들이 내 딸에게 지금 이 순간의 순수한 사랑을 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랑을 오히려 계속 저렇게만 지속될 거라는

정체된 것으로 판단해 버리니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구나

내가 집중하고 힘을 쏟으면 되는 문제를 나도 모르게 귀찮은 이유로 하기 싫은 이유로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 가족들은 내 가족이지 내 딸의 엄마 아빠도 아니라는 사실.

보이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맞다는 사실.

그렇게 보면 내 가족들은 정말 엄마 아빠도 아니면서 정말 잘해주고 있다는 사실

“나는 가족들에게 고맙다고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은 욕구는 올라온적이 있는가?”

왜 항상 가족들에게 부족한 것만 보이고 잘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잘하고 있는가? 오히려 가족들이 나를 보면 너무 딱딱하고 빡빡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그날 생각의 의자에서 벗어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말은 쉽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내가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내가 하면 된다.

그러나 조건은 상대를 통제하지 않으면서 부담 주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면 된다는 사실.

내가 내린 지금까지의 정답은 이것이었다

“내가 아끼는 것을 남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답답했던가. 하지만 이것을 알았다 해도

이것이 진짜인지 본질이니 나는 말할 수는 없다.

이제 행동으로 옮겨 지켜보고 결과를 보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이제 내가 하고싶은던 잔소리를 내가 힘들어도 귀찮아도

내가 더 신경 쓰고 해 보려 다짐을 했다.

동생들이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면 그들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미리미리 메꾸어주고, 대비해 주고 보내고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들을 이해하고, 후처리를 하고,

부모님이 딸아이에게 과해보이는 칭찬을 하면,

오리혀 나는 딸아이에게 할머니가 너를 무척 사랑하나 보다.

그러니 너도 할머니를 많이 사랑해 주 아야 해.

정말 위험한 것이 아니면 위험해 보이는 행동들을 제지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안 다치게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고,

아이의 자율성과 유능감을 위해 더 격려해 주고,

저런 식으로 놀고 행복을 느낀다면 위험하지 않게 하는 방법과 너무 위험해 보인다면 다른 방식의 놀이를 통해 채워주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저렇게 나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금도 매일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 사는 인생이 이렇게 복잡하고 신경 쓸 일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오히려 또 계속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편해지고 있다 하 그래서

사람은 멍하게 있는 시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딸아이와 나의 관계 가족들과 의 관계

이 관계의 연결을 지키면서 통제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전달하려는 노력,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 아니라, 정말 그가 한 사람이 원하는 사랑.

사랑하는 건 쉽다,,, 정말로 쉽다

정말 요즘따라 느껴지는 건 사랑해 주는 건 정말 능력이다.

열심히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금방 퇴보하는 이 느낌… 내가 사랑할 능력이 없기에,

다른 부분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불만으로 다가오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게 되는 방식 속에 머물러

내가 관계 속에서 허둥지둥, 마치 수영할 줄 아는 오리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물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나에게 끝이 없는 과제를 던져준다 왜 끝이 없을까,, 아이는 성장 중이며

나 또한 성장하며 늙어가는 중이기에..

나는 가끔 밤에 혼자 공원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신경 쓰고 싶은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것이가.

아니면 이런 취미가 나에게 생각의 최적의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명명할 필요는 없다. 밤에 혼자 나와 조용한 부위기, 풀냄새, 물소리 도시의 차소리가 섞여있으면서도 공허한 분위기

이 분위기가 바로 내가 선호하는 장소 일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한 번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내가 딸아이를 양육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랑.

아니해볼 용기도 가지지 않았을 사랑하는 법 , 사랑하는 능력

그러다 갑자기 메뚜기 한 마리가 내 앞을 휙 하고 튀어 올랐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동시에 이런 자동적인 사고가 올라왔다, 무슨 연결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연결성 없는 이미지가 올라왔다.

나의 전 배우자와 이혼한 이유.

그때의 나는 철없고, 융통성이 없었으며, 고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사랑을 붙잡는 사람이었다.

떠나면 안 돼. 변하면 안 돼. 우리는 항상 함께여야 해.

사랑보다 관계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정답을 가졌다고 믿지 않는다.
멈추지도 않는다.
계속 배우고, 수정하며 성장한다.

지금의 나는 사랑을 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떠날 수도 있다.
변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말은 멋있다. 가끔 이런 내가 철학자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진 말만 멋있다.

왜냐하면.. 정말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매 순간순간이 실험이면서, 도전이다,

이것만 보아도 매일 똑같지 않은 삶이 아닌가?

너무 거시적으로 내 세상을 보면 정말 보잘것없이 똑같은 굴레 속에서

쳇바퀴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의 연속인 것!!

정말 생각할 용기가 필요하고 고민할 용기가 필요하고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용기 필요하니 매일 다를 수밖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내일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으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길 바라며 새로운 장을 향해 눈을 감는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