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Second,

by칸테

딸과 나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는 나의 가족들 고마운 존재이면서

딸을 키워야 하는 양육자들

너무 고맙다 하지만 가끔 누구의 딸인지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아빠로서 부로모서 드는 감정

할머니 고모 삼촌으로서 내 자식을 보는 마음

그 마음들이 부딪히는 정도가 심할 때가 있다. 나는 가끔 냉정하게

내가 아빠니까 내 말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소리칠 때가 있다.

“내가 부모라고!!”

그러고 뒤돌아서면 마치 내가 너무나도 야비하고, 내가 아빠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나의 딸을 키워주며 같이 웃고 울고 자라온 각자의 사랑과 마음을

내가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곤 했다.

더 냉정하게 이야기해 보면

가족들에게 아이를 키워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는 은연중에 무언의 말로 가족들을 압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기준에 맞게 나의 생각에 맞게 키우기만 하고 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도와라.”

사람은 각자의 방식이 있고, 각자의 생각이 있고, 각자의 생존하는 방법이 틀리기 때문에.

분명 제각기 틀리다는 것을 늦게 알았는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여러 사건들 때문에 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은 그랬다.

아이를 두고 씻기는 문제, 밥을 먹이는 문제

훈육하는 문제 등등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말하는 것을 잘 수용해주시지 않는다.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하는 거야”

하.. 나는 그런 말이 싫었다 나도 아이를 위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공부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와서

이렇게 해보자고 하는 말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고모들은 아이들과 놀아준다, 정말 부모의 마음을 넣지 않고 놀아준다.

놀아주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다칠까 봐 무섭고,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간다는 소리만 들리면 내 동생들이 아이를 다치게 하고 그 다침으로 인해서

내 동생들 또한 죄바카라감에 쌓여 힘들어할 것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아이 좀 잘 챙겨라” “섬세하게 좀 해봐라”

그러고 나면 한차례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이의 엄마가 있었더라면 내가 이런 잔소리를 하고 있을까?”

내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내 동생들에게 엄마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고 있는 걸까.

한참 놀아야 할 나이에 동생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20 초반 자신들의 할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한창 즐길거리들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것인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아이의 교육은, 아이의 마음은,

참 여러 가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마음이 분수처럼 폭포처럼 쏟고 치는데. 이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동생들에게 부모님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를 두고 떠난 아이엄마가 미워지곤 했다.

“하.. 정말 아이를 키우는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 속에서 조율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구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배가 고프면 먹이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울면 안아주고, 세상을 하나씩 알려주면 된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

나는 안전을 먼저 생각했고,
어머니는 경험을 먼저 생각했고,
동생들은 즐거움을 먼저 생각했다.

모두가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단지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부모가 되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걱정하고,
나처럼 불안해하고,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사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아이의 아빠는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 알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걸.

그렇게 문득 담배 한 대를 물고 집 근처를 걷고 있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부모님에게 화를 냈던 일.
동생들에게 짜증을 냈던 일.
아이를 두고 벌어졌던 수많은 갈등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내 딸도 한 사람이구나."

너무 당연한 말인데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늘 내 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어느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오빠, 신해를 너무 딱딱하게 키우는 거 아니야?"

"애들은 좀 자유롭게 커야 돼."

"신해도 실수할 수 있잖아."

"아들아, 아이는 다치면서 크는 거야."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반박했다.

'아니, 나는 아이를 위해서 그러는 건데.'

'나는 사랑해서 그러는 건데.'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해서
내 방식만 옳은 것은 아니구나.

나는 가족들에게

'나처럼 생각해라.'

'나처럼 걱정해라.'

'나처럼 키워라.'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은

내 딸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나의 복제품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밤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달도 밝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어두웠다.

방향은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흐려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 걸까.

부모님과 동생들이 하는 방식도 모두 인정해야 하는 걸까.

부모로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 딸은

'내 아이'이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한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나는 여전히 이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쳐야 하는 아빠다.

어쩌면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아이를 어떻게 내 뜻대로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어디까지 들어가고,
어디서부터 기다려주어야 하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 가까이 가면 통제가 되고,
존중한다는 이유로 너무 멀리 서 있으면 방관이 될 수도 있다. 아 너무 복잡하다,

정말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싶지만, 자꾸만 해야 한다는 그런 느낌 아닌 느낌이 전해진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는 어디쯤에 부모가 서 있어야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기 전에
이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번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데려가기 전에
이 아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한번 기다려보는 것.

아마 진짜 아빠가 된다는 것은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계속해서 자신의 답을 고쳐가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방법을 하나씩 배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만 하면 뭐 하나,

행동으로 해보아야지, 하던 순간

지금의 나는 실수할 용기, 좌절할 용기, 다시 생각하고 개선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나는 딸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도 없었다. 이건 팩트다.

일을 해야 했고, 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부모님과 동생들이 사는 집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서 딸아이는 할머니와 밥을 먹고, 고모들과 놀고,
삼촌과 장난을 치며 자라고 있었다.

팩트는 언제나 시원하지만, 그 속에 숨은 수많은 장면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마치 용기는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그 안에서 다시 행동하는 힘 같은 것? 하 여 튼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이 아이의 아빠였지만,
아이의 하루를 채우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가족들은 아이를 안아주었고, 밥을 먹였고, 울면 달래주고 함께 웃어주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이 아이와 함께 쌓아온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빠라는 이유로 그 모든 관계 위에 서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부모니까 내 방식대로 해줘.”

지금 생각하면 그 말속에는 바카라임감도 있었지만,
내가 보지 못했던 욕심도 조금은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가족에게 아이를 맡기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사랑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있을 때의 아이이면서,
할머니와 있을 때의 아이였고,
고모와 있을 때의 아이였으며,
삼촌과 있을 때 또 다른 모습으로 웃는 아이였다.

그 관계들을 모두 내가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 내가 결정해야 하고,
어디까지 가족들의 방식을 인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사랑 속에서 자라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바라볼 것인지.

나는 그 답을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진짜 아빠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까지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아이와 가족, 그리고 나.

그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공존하는 법 하.. 내가 이걸 이제야 경험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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