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줄 알았다.

First,

by칸테

1장 나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이혼하지 않을 줄 알았다. 정말로 그랬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부족한 탓일까, 그녀가 부족한 탓일까

내가 배움이 부족했던 것일까, 서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일까

양보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면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것일까

딸아이의 100일 잔치를 해보기 도전에 일은 벌어졌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과 고통 속에서 이탓도 해보고 저탓도해보고

남아 있는 딸을 위해 움직이려고 다른 것에 일부러라도 집중을 하며

집에서는 청소만 주야장천 해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다가올 줄 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라서 이렇게 버티기 버거울까? 아니면

내가 원하던 그림의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라서

이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까 참 많은 고민을 하며

그때 의 나는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텨냈는지 참 신기하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글을 집필하는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그만큼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마음도 정신까지도.

그때 당시 그녀는 잠시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한순간 무너지게 되었다. 이혼서류가 도착하고

우리는 각자의 변호사를 옆에 끼고 법정에서 만났다.

참 나는 반가웠다. 법정에서는 아이를 서로 데려가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참 이상하게도 우리는 친했다 친구처럼 지금 막 같이 살고 있는 나의 아내처럼. 그러나 현실은 이혼을 하고 있는 부부이고

법정 앞에서 잠시 떠들고 있는 우리였다.

그렇게 나는 이혼을 할지라고 아이만은 보낼 수 없기에 수많은 노력을 했다. 그때의 나는 이혼도 처음이지만, 이혼재판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꿈에도 몰랐다. 몰랐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인지

이혼소송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엄청 나에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그녀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님에게 부탁을 했다 제발 제가 키울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 변호사님은 60대의 판사출신의 이였다. 수많은 사건과 경험이 말해주듯 나에게 건네는 말은 짧고 간단했다.


“이기는 것이 있으면 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셔야 합니다.”

그 당시 나는 참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잘 되돌아보면 그것이 한 인간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는 자세가 아니었을까 내 욕심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몇 번의 재판이 열렸고, 그중에서도 아직도 나는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이혼 조종 과정 중에서 판사님의 말이었다.

아이를 두고 하는 문제는 보통 90프로는 엄마가 데려갈 수 있다는 사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저게 무슨 말일까.

그렇다면 아빠는 무엇을 해야만 아이를 데려가 키울 수 있다는 것일까

그 말을 듣고 참 많은 걱정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분의 말을 곱씹으며, 즐겁게 웃고 있는 딸과

엄마가 없는 옆자리를 지켜주는 고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저 아이가 사라진다면 지금 우리 가족들의 이런 웃음

목적 없는 웃음 정말 순수한 웃음과 행복.

그 생각에 나는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안 되는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이 들기 도전에 바카라을 들고 좋은 말 명언 인생에 대한 바카라들만 골라 읽었다.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좋은 부모는 어떤 것이며를 나 스스로 배워갔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 나는 이제 엄마의 역할도 해야겠다.”

그래서 좀 냉정하고 차갑고 딱딱한 말만 구사하던 내가 딸을 위해서

오글거리는 감정적인 이야기도 연습하고 망가지는 연습도 하며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못 느끼게 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아이를 씻기고, 조금 더 섬세하게 머리를 쓰다듬고

이야기하고, 잠을 재웠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리스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내 가족들에게 딸아이를 맡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빚지고 사는 것도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게 하는 것도 싫어하던 나였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부탁을 해야 하고 딸은 잊지만 일하는 동안은 혼자 지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화가 나고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꿈꾸던 결혼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도 매일 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지금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

도움받고 얼른 다시 일어나서 도움을 준 가족들에게 은혜도 갚고 딸에게 멋있는 아빠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 별을 보며 담배를 피우다 왜 이게 두 마리 토끼인가에 또 생각이 빠져버렸다.

정말 웃기게도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 평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다 공원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별똥별처럼 나에게 내려온 생각이 하나 더 있었다.

“맞아 이건 사실 내가 평범하다고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내현실은

이게 맞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편해졌지만, 무언가

갑자기 철학가가 된듯한 느낌 무언가 조금 깨달은 이 느낌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개념은 보통 가정 보통 아빠 보편적인 것들.. 이것들이 문제다!!

마치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나에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감옥이 되어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이 세상에는 고정된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항상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친엄마 없는 100일 잔치 아직 재판은 진행 중이고

참 기분이 묘한 100일 잔치를 느꼈다. 인생이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구나를 또 한 번 절실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온전하게 기쁘지도 않으면서 다 같이 사진을 찍는 순간 옆에 비어있는 빈자리는 저 멀리 있다는 사실.

이것이 인생이구나 이것이 현실이구나를 배워가는 날이었다.

100일 잔치는 끝이 나고, 집에 돌아와 다시 나는 내일을 준비해야만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고 씻고 홀로 방에 누웠다.

빈 공간 온기가 없는 집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안

나는 그곳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빌어볼까?”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와이프의 목소리

“ 내일 만날 수 있어?”

나는 무작정 본론을 던져버렸다. 와이프는 당황한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던 것인지 승낙을 하고 우리는 약속을 잡고 내일을 기다렸다.

차를 몰고 그녀에게 가는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빌고 무릎도 꿇고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지만 용서를 구해서라도 다시 같이 살아보자 고 해야지

저런 생각을 한 것도 딸아이 때문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딸아이에게 한말은 남기고 싶었다 많이 용서도 구하고 빌어보았다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만약 딸아이가 커서 묻는다면 해주고 싶었다.

그런 용기로 나는 그녀의 앞에 서서 내 생각에는 정말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용서를 구했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결혼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만을 던지고 정말 무심하게 거절을 하며 돌아섰다.

그때 정말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집에 오는 길에 괜히 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했다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렇게 숨 쉴 틈도 없이 마지막 재판

아이의 방향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법정에서 마주친 우리 둘은 마지막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재판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함께 있던 변호사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었다.

자신의 소싯적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젊어서 스키 타고 자전거 등산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나는 문뜩 이 아저씨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했다.

왜냐하면 저 건너편에서는 이기기 위해서 그녀와 그녀의 변호사는 재판을 위한 전략을 짜는 듯했지만,

우리의 변호사님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며 마치 커피숍에 앉아 같이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어 그런데 문득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던 중 이런 생각이 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 변호사님이 하시고 싶은 말은 편하게 진실하게 하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변호사님과 재판과는 무관한 아무 쓸모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참 재미있게 변호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재판의 순서가 찾아와 함께 들어갔고.

판사님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저는 양육비도 위자료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딸아이만 키울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말이었다.

재판은 끝나고 나와 변호사님이 먼저 나가고 그 뒤로 와이프가 나왔다.

무언가 이제 오늘이 마지막일 것같다라는 느낌이 밀려들어오면서

나는 이런 말을 던졌다,

“오늘 내가 역전에 태워줄게 커피 마시고 가자”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냐 는 말을 저런 식으로 한 것 같다.

둘이 커피를 마시며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용서해 달라는 말도

용서해 줄 게라는 말도 다시 시작해보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마지막은 이렇게 웃으면서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와이프를 역전에 태워주고

나도 집으로 향해 갔다.

며칠 후 우편으로 재판결과가 오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때당시 20살 후반이었지만

무언가 지금보다 더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느낌 아빠가 되었다는 그 느낌

내 아이지만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도와달라는 그 간절함을 타인에게 바래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지만.

재판 결과를 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그 문장을 보며

이제 무언가 다시 시작하면 되고, 이제 아빠가 되는 길을 걸어도 되겠다는 방향이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

그날 나는 정말 행복하게 딸아이와 함께 잠에 들 수 있었고, 동시에 묘한 감정이 지붕에서 물이 새듯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딸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혼이라는 과정이 끝나가고 있을 뿐,
나와 딸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뒤에는 이상하게도 묵직한 바카라임감이 따라왔다.

‘그런데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데려오는 것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법원은 내가 딸을 키울 수 있도록 결정해 주었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좋은 아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디까지 보호하고 어디서부터 놓아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이제 도망갈 수 없었다.

내 옆에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이 작은 아이와 함께
하나씩 배워가야 했다.

그날 나는 아빠가 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날부터, 진짜 아빠가 되어가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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