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라고 했으니까 샀지!

by청파 강성호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냈다.

그리고 멸치 앞에 앉았다.


오늘까지 사흘째다.

멸치 머리를 떼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등뼈를 발라낸다. 멸치 한 마리 손질하는 데야 얼마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 멸치가 한두 마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주 언제였던가.

아내가 멸치를 샀다고 했다.

“가격도 괜찮고, 중멸보다 조금 크니까 볶아 먹어도 되고 육수 내기도 좋겠어.”


그러면서 한 박스를 주문했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멸치는 꽤 중요한 식재료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진하게 우려낸 멸치 육수에 말아낸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큰공도 좋아하고 사위도 좋아한다. 갑자기 집에 왔을 때 마땅한 음식이 없으면 멸치 육수를 내서 잔치국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니 멸치는 떨어뜨리지 않고 준비해 두는 편이다.


멸치 하면 또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멸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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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명절에 처가에 가면 음식상이 푸짐했다. 이것저것 집어 먹다 보면 밥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그때 밥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로도 좋은 것이 멸치전이었다.


멸치전이라니.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제법 맛있다.

중요한 것은 부침가루가 아니라 반드시 밀가루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죽도 너무 묽으면 안 된다. 숟가락으로 떠서 떨어뜨렸을 때 주르륵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 약간 되직하게 반죽한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한입에 집어 먹을 정도 크기로 팬에 올리고 그 위에 잔멸치 몇 마리를 얹는다.


끝이다.


별것 아닌데 고소하고 짭조름하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도 가끔 멸치전을 부쳐 먹는다.


하여간 그렇게 산 멸치가 자그마치 1.5킬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멸치 1.5킬로가 얼마나 되겠어.’

그런데 박스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아니다.

아주 많았다.


결국 한꺼번에 손질하기는 벅차서 사흘째 아침마다 멸치 앞에 앉아 있다.

아내와 내가 손질하는 방법도 다르다.


아내는 머리를 떼면서 내장까지 한꺼번에 빼낸 뒤 몸통을 반으로 갈라 뼈를 발라낸다.


나는 다르다.

머리만 먼저 떼어 따로 모은다. 몸통을 반으로 갈라 내장을 빼고 등뼈를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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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다.

멸치 머리를 버리지 않고 볶아두었다가, 육수를 낼 때 사용하려고 따로 모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처음부터 멸치 머리를 사용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모양이다.


멸치를 붙잡고 몇 시간씩 앉아 있으니 별생각이 다 든다.


‘멸치를 잡아서 일주일쯤 굶겨 놓으면 어떨까?’

먹는 것이 없으니 뱃속도 깨끗해질 테고, 그러면 사람이 이렇게 일일이 내장을 빼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일주일 굶기면 똥은 다 싸겠지만 멸치가 먼저 배고파 죽겠다.’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멸치 머리 떼고 배 갈라서 내장과 뼈를 자동으로 제거하는 기계를 만들면 돈 좀 벌겠는데.’


멸치 한 마리 한 마리 배를 가르다 보면 발명가도 되고 철학자도 된다.


그렇게 멸치를 손질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손질된 멸치 사.”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당신이 사라고 했으니까 샀지!”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멸치가 멈췄다.


“내가 언제?”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나도 내가 이렇게 손질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안 샀어!”


그러고 보니 어딘가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가격 괜찮다기에,


“그럼 사.”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사흘 동안 멸치 머리를 떼면서 나는 줄곧 아내가 멸치를 너무 많이 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범인은 따로 있었다.

오늘도 내 앞에는 아직 손질하지 않은 멸치가 남아 있다.

나는 말없이 남은 한 마리 멸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머리부터 뗐다.

26. 9. 20.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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