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 후

정의하고 싶지 않은 관계

by연두



이 글의 전편이지만, 안 읽어도 전혀 상관은 없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 나는 혼자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운동장 한쪽 구석에 나무들이 우거진 곳으로 갔다. 무성한 플라타너스 잎들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편지를 꺼냈다. 1교시 쉬는 시간부터 오전 내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그 애의 편지였다.




그 애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며칠 후 친구 KH가 편지 한 통을 전해줬다. 농구를 좋아해서 쉬는 시간마다 농구장에서 사는 그 애가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연한 핑크빛 정사각형의 조그만 편지봉투엔 'To. 연두'라는 글자가 반듯하게 쓰여있었다.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는 그보다 작은 글씨로 'From. ㅇㅇ'라고 적혀있었다. "많이 놀랬지?"로 시작한 편지는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 고마웠다는 말을 했고,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꿈만 같았다. 읽고 또 읽었지만 정말 그 애로부터 온 편지였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편지 고맙다고, 나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썼다. 이틀 만에 또 답장이 왔고, 나도 그 답장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화이트데이엔 사탕선물을 받았다. 친구들은 이제 사귀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난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고백을 하면서도 그 이후의 일을 계획한다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선 '이성교제 금지'가 거의 매일 듣는 사상교육 같은 거였다. 혹시라도 이성교제를 하게 되면 대학은커녕 인생이 낭떠러지로 추락할 거라고 믿었다. 커플인 아이들은 주홍글씨라도 찍힌 듯 선생님들의 따가운 눈총과 간섭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친한 친구 KH가 그 애와 한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메신저 역할을 자처해 주었다. KH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나와 그 애를 오가며 비밀리에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뭘 좋아하는지,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농구를 해서 몇 대 몇으로 이겼는지, 봉사활동을 어디로 다녀왔는지.... 등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했다. 하나도 시시하지 않았다. 마치 좋아하는 아이돌의 일상 브이로그를 그저 보기만 해도 재밌는 것과 같은 마음이려나.



글씨는 또 얼마나 정갈하던지. 깔끔하고 일관된 필체가 나완 너무 달랐다. 내 글씨는 그날 기분이나 펜에 따라 달라지고 정신없는데, 그 애의 글씨는 한결같고 단정했다. 어쩌다 틀린 글자가 생기면 그 위에 조그맣게 철조망을 뽀글뽀글 그려 놓았다. 옆에 '미안'이라는 글자와 우는 얼굴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 애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글자 하나하나를 그리듯 온 정성을 다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제일 예쁜 글씨를 적으려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애도 내 글씨를 단정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수학여행날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디로 갔는지 가서 뭘 했는지 거의 기억나질 않는데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다. 수학여행지에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가게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나 잡스러운 소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팔찌나 키링 같은 걸 가족수대로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뭔가를 사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골라 보았지만 딱히 살게 없어서 구경만 하다가 그냥 나왔다. 친구들과 근처 벤치에 앉아 서로 산 것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문득 KH가 멀리서 다가왔다. 뜬금없이 조그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너 주래. 좋겠다!" 하고 웃으면서 사라졌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급하게 주머니 속에 상자를 쑤셔 넣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해 보았지만, 아이스크림을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마음은 온통 그 작은 상자에 가 있었다.



아까 가게들 중에서 봤던 은목걸이였다.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말풍선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수줍게 매달려 있었다. 가운데에는 조그만 큐빅이 앙증맞게 붙어있었다.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하트펜던트가 발랄하게 흔들리며 빛났다. 가을날의 햇볕이 하얗게 반사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로맨스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면 그 이후는 아주 몽글몽글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한 편의 해피엔딩 러브스토리가 아닐까.



학교에서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안 되었지만 어떻게 이 목걸이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목걸이를 하고 교복 블라우스 단추를 꼭 잠그니 감쪽같았다.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듯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 비밀은 오래 간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알러지가 생겨버린 것이다. 목걸이를 한 자리를 따라 새빨갛게 무언가가 돋아났고 너무 가려워서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은 편지에 미적분이 어렵다고 적혀있었다. 그때의 나는 수학에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도 주제넘은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부끄러움 따윈 없었는지, 부끄러움보다 걱정이 앞서서였는지 나는 미적분 개념을 꼼꼼히 정리해서 편지에 넣어 보냈다. 정석에서 해당 연습문제를 찾아 주석으로 달아놓았고, 다른 문제집에서 비슷한 유형문제를 찾아서 필사해 주었다. 지금 고3 아들의 대형학원 조교선생님이 그런 걸 해주는 것 같던데 어쩌면 나는 조교선생님 재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편지엔 점점 여러 가지 부록들이 딸려 오가는 날이 많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온 날엔 시디가 함께 들어있었고, 지나가다가 샀다는 조그만 강아지 키링이 편지봉투에서 툭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예쁜 나뭇잎을 주워다가 좋은 글귀나 시 한 구절을 적어 코팅한 것들을 편지에 넣기도 했는데, 딴엔 최상의 마음 표현이었던 듯 싶다. 안타깝게도 당시엔 굉장히 세련되고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편지가 쌓여가는 동안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어쩌면 친한 친구 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에선 전혀 친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전혀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 애도 나도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무리 속 서로에게 선뜻 다가가 말을 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만나면 서로 데면데면하며 지나갔다.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는데 도무지 말을 건넬 용기는 없었다. 어쩌다 그 애가 먼저 "안녕" 하며 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안녕" 했다. "잘 가" 하면 "너도 잘 가" 했다. 가끔은 "어디가?"라고 했고, 그러면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고3, 야간 자율학습이 의무적이던 시절이었다. 저녁 도시락을 먹고 야자 독서실에 가기 전 뒷정리를 하려고 교실에 남아 있었다. 다들 독서실에 갔는지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문득 그 애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서는 게 아닌가.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하기도 전에 그 애가 말했다. "뭐 해? 혼자 있어? 얘기 좀 할 수 있어? "




저녁 어스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창밖은 금세라도 어두워질 것 같았다. 그 애는 내 앞자리 의자에 걸터앉았다. 창문으로 약간 쌀쌀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바깥 어딘가에서 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지나갔다. 독서실 입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린 둘 다 시계를 보지도 묻지도 않았다. 누구라도 시간을 물으면 이대로 대화가 끝나버리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태연한 척 꼼짝하지 않고 얘기했다. 화제는 편지로 나누던 시시한 일상의 연장이 대부분이었다. 공부는 잘 되는지, 진로에 대한 고민 따위들...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잠깐의 언급이 있었다. 이 기이하지만 소중한 관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말했고, 그 애는 모든 게 다 끝나면 그땐 더 친해지자, 수능 끝나면 밖에서 같이 밥 한 번 먹자라고 했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나는 처음 들어보았다. 슬롯에 나가면 흔하게 듣는 말이지만 그때 나는 촌스럽게도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고등학생으로서 할 리도 들을 리도 없는 말, 밥 한 번 먹자라니. '밥을 왜 같이 먹지?' 그래도 알겠다고 했다. 어느덧 캄캄해졌고 사방이 조용해져 있었다. 교실에 불도 켜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이고 무시했던 종이 또 울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 번째 출석체크 시간이었다. 이때도 자리에 없으면 정말 큰일 난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일어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면서 추억상자를 열어보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상자 속 은목걸이는 오래된 유물처럼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편지들 역시 제 색을 잃고 누르스름해졌다. 그래도 또박또박 적힌 그애의 글씨는 여전히 선명했다. 빼곡한 글자들을 읽다보면 갑자기 모든 것이 되살아난다. 주머니 속 각진 편지봉투의 느낌,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던 목걸이의 반짝거림, 교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가을밤의 공기가 생생하다.



문득 알 것 같았다. 그때 우리, 서로에게 큰 의미였구나. 전부였구나. 그때는 몰랐다. 서로에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서로가 소중하고 애틋하다는 걸 느꼈지만 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가는 방법 또한 알리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런 관계도 있다는 것을. 뭐라 정의할 수 없어도 인생에서 큰 의미였고 중요한 관계가 있음을. 이제와서 일부러 어떤 한마디 말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릴 것 같다. 그러기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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