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앞으로
강남역 10번 출구로 나오면 번화가가 시작된다. 대로 양쪽으로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그 아래로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6월의 주말, 초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햇살은 눈부셨다. 누구라도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날이랄까.
다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온 것만 같았다. 한껏 꾸민 옷차림과 화장이 화사했고, 소개팅이라도 하는 건지 말쑥하게 차려입고 들뜬 표정의 남자들도 보였다.
사람들의 무리를 따돌리며 겨우 도착한 곳은 골목길 구석에 있는 카페였다. 그가 전날 알려주었던 곳이었다. 인파 탓에 더디게 걸었는데도 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버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을 하나하나 꾹꾹 밟아 올라갔다.
'먼저 와있고 싶지 않았는데.'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테이블의 절반을 노랗게 차지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짙은 파랑의 하늘이 통째로 바라보였다. 새하얀 솜뭉치 같은 구름이 드문드문 흩어져있었다. 방금 지나온 골목길엔 사람들이 천천히 오갔다.
"안녕?"
못본새 살이 많이 빠져 보였다. 특히 볼이 홀쭉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안돼 보인다는 말을 잘 몰랐는데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저런 얼굴을 말하는 거였구나 하고. 나머진 그대로였다. 깔끔한 성격답게 다려 입은 셔츠에 짙은색 면바지 차림이었고, 두 달 만에 헤어스타일이 변할 리도 없었다.
인사는 했지만 미소가 지어지지는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마지막을 알고 만난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을 만큼 우린 성숙한 나이가 아니었다.
나는 쓴 커피맛을 몰라 늘 즐겨 먹던 모카라테를 시켰고, 단걸 안좋아하는 그는 늘 그렇듯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주문을 마치자 또 할 말이 없었다. 창밖에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커플들이 보였다. 활짝 웃고 있는 여자가 즐거워 보였다. 그가 말했다.
"잘 지냈어?"
"응"
엉겁결에 응 이란 대답이 나와버렸다. 대체 왜 그렇게 답했는지, 뭘 잘 지냈다는 건지 모르겠다.
"오빤?"
"나는 잘 못 지냈는데. 그래, 넌 좋아 보이네."
좋아 보인다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말하면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은가.
"반지, 뺐네?"
"응"
나는 커플링을 하고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얼마 전 친구들이랑 우정반지라고 하면서 산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 두 달 전 크게 싸우면서 커플링을 빼버렸다.
지금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무언의 의사표현이기도 했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젠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도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두 달 전 내가 한 말,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지쳤다고,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그는 많은 말들을 미리 준비해 온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연습해 온 것처럼 한마디 한마디 공들여 말하는 그의 말을 끊을 수가 없기도 했고, 점점 내가 하려던 말은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자기 손에 반지를 빼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네 번째 손가락에 가느다란 띠가 뽀얗게 새겨져 있었다. 그와 만난 이후로 그의 맨손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내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를 미리 빼지 말 걸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정말 끝났다. 우리는 누구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끝난 것이다. 이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두 달 전 큰 다툼, 그전에 잦은 오해들, 수많은 갈등 등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헤어질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런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좋은 날도 분명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작은 균열들이 생겼고 커졌으며 결국 다시 이어 붙이기 어렵게 되었다. 누군가 노력한다면 다시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군가가 이젠 없다.
그 모든 걸 설명하려면 관계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믿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그 시효가 다 되었다는 걸 서로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그가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어깨를 들썩이고 거칠게 숨을 쉬면서. 그가 우는 건 처음이었다.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따라 눈물이 나왔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이젠 진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할 말도 없었다. 내가 먼저 이렇게 만들어버린 이상 이제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도 지쳤다고, 나도 최선을 다했다고, 똑같은 말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사귀면서 서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관계가 있을까.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해도 각자로선 최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햇살이 테이블 귀퉁이로 쫓겨나 있었다. 세모지게 접은 냅킨 조각이 가까스로 매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이젠 지쳤다"는 그의 말이 참 아팠다. 그렇게 말하지 말지.
거리로 나오자 사람들이 더 불어나 있었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어디로든 빨리 갈 길을 정해 움직여야만 했다. 우리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야 했다.
돌아서서 먼저 무작정 걸었다.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 이름을 똑똑히 외쳤다.
"ooo! 잘 살아라!"
누군가는 몀춰서 소리 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나는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대로 그냥 사람들의 속도에 따라 앞으로 걸었다. 세상이 등 뒤로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잘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야. 지금은 안돼. 집까지 가야 돼.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정신 차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참기를 포기해 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안 보이니 조금 덜 창피한 것도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어디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았다. 오른쪽에서 다가오고 왼쪽에서 부딪히면서 밀려가는 행렬 속에 그냥 떠밀려 앞으로 갔다. 상관없다 싶었다. 그냥 어디로든 빨리 데려가주었으면 싶었다. 햇살이 환하고 하늘이 너무 파래서 빨리 숨고 싶었다.
이 글은'가을방학'의 '이별 앞으로'라는 곡을 듣고 떠오른 기억을 쓴 것입니다. 노래 가사 중 한 구절을 차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