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끝맺지 못한 관계
*주의
이 글은 얼마간의 오글거리는 로맨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에겐 미리 양해부탁드립니다. :)
옥편 꺼내. 안 가져온 사람 일어서!
오늘은 손바닥 맞는다.
선생님께서는 회초리를 들어 손바닥을 내려치는 시늉을 하셨다. 서랍 속에 옥편이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봐도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제야 저번 시간에 숙제를 하느라 갖고 가서 독서실에 두고 왔다는 게 생각났다. 큰일 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문 선생님은 엄격한 분이었다. 지금 말로 하면 완전 꼰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문 선생님은 때린다면 때렸다.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체벌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교실에서 아주 흔한 풍경이었다.
짝이 왜 그러냐 물었다. 옥편이 없는 거 같아. 안절부절못하니 안돼 보였는지 같이 찾아봐주려 했다. 내 서랍에서 꺼낸 바카라들을 다시 살펴보고 가방도 다시 열어보라고 했다. 그렇다고 독서실에 두고 온 옥편이 그 애의 눈에 띌 리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독서실에 두고 온 거 같다고 말했다.
일어서는 일도 손바닥을 맞는 일도 죽기보다 싫었다. 창피했다. 무엇보다 매를 맞는 게 무서웠다. 남자아이들은 매를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히려 우습다는 얼굴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했다. 기분 나쁘다는 내색을 한껏 하면서 의기양양해하는 태도에 나는 되려 노심초사했다. 선생님의 심기를 더 건드릴 것 같았다. 그러면 더 맞을지도 모르는데 저들은 모르는 걸까.
고2, 우리 반은 두 달에 한 번 짝을 바꿨다. 그 애와 짝이 되었다. 말 수 적은 남자애. 서로에게 용건도 없었고 대화할 기회도 없어 말 한번 나눠본 적 없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관계. 서먹했다. 불편하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뭐 상관없지. 그 애는 말이 많진 않았지만 할 말은 하는 애였다. 아무래도 짝이 되고 보니 말할 일은 생겼다. 지우개나 샤프심을 빌린다거나 볼펜이 그쪽으로 굴러 떨어지면 서로 주워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화라고 할만한 건 없었다.
국사시간에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배우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기분이 나빠서 서로 몇 마디 하다 보니 열띤 대화를 하게 되었다. 실은 대화라기보다 당시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일본을 같이 욕한 것에 불과하지만, 꽤나 의견이 맞는다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웬만해선 다 같은 마음일 터인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의 바카라상 위에 '과학동아'가 놓여있는 걸 보게 되었다. 그것도 나온 지 얼마 안 된 이번 호였다. 너 이거 샀어? 이거 보는 애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했다. 자기는 매달 사 본다나. 세상에. 나도 이거 본다고 했더니 다 보고 빌려주겠다 했다.
당시 나는 '과학동아'와 '뉴턴'이라는 과학 월간지를 즐겨보았다. 매달 사기엔 용돈이 모자라서 대개 두 달에 한 번꼴로 서점에 갔다. 야속하게도 잡지는 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었다. 펼쳐볼 수 없으니 표지에 적힌 이달의 주제와 콘텐츠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했다. 두 잡지를 번갈아가며 어떤 기사가 들어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그러다 둘 중 좀 더 신기하거나 흥미로워 보이는 쪽을 골랐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나 UFO, 블랙홀. 이런 주제가 나오면 참을 수가 없었다. 헷갈릴 때도 있었다. 메인 토픽은 뉴턴 쪽이 더 궁금한 거였는데 이상하게 나머지 내용들은 과학동아가 더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골치가 아팠다. 용돈을 아껴서 두 달에 한 번, 별러서 어렵게 사는 잡지인 만큼 내겐 심각한 고민이었다.
"혹시 너 뉴턴도 봐?"
"잘 안 보긴 하는 데 있으면 봐."
"그래? 그럼 내가 이번 달에 뉴턴사면 빌려줄게. 바꿔보자"
나는 두 달에 한번 뉴턴을 샀고, 그 애의 과학동아와 바꿔보았다. 그 애는 매달 과학동아를, 나는 두 달에 한번 뉴턴을. 불공평한 계약이었음에도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매월 충실하게 과학동아를 가져다주었다.
갑자기 그 애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서 재빨리 한 손으로 자신의 옥편을 내 쪽으로 밀어냈다. 겉면에 자기 이름 이니셜이 버젓이 적혀있는 옥편을 왜?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하기도 전에 한문선생님이 그 애를 쳐다봤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일어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이라도 내가 일어서야 하는 건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얼굴은 화끈거렸고 손바닥은 축축해졌으며 가슴은 쿵쿵쿵 요란하게 뛰었다. 이미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하는 선생님, 손바닥에 갖다 붙는 막대의 둔탁한 소리가 거듭될수록 온몸이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일어섰어야 했고 내가 맞았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겁했다. 얼굴을 들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별로 안 아팠다고 말하는 그 애. 안 아플 리가. 옥편 한 권을 같이 나눠보면서, 안 그래도 한자라면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아 징글징글한 나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위 옥편이 뭐길래, 그따위 매가 뭐길래. 나 자신이 한심해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 바랐다.
짝이 바뀌고도 우리의 계약은 한참 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세 권의 잡지를 다 읽는 건 생각보다 무리였다. 2학년이 끝나가면서 이제 곧 고3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도 있었으리라. 드문 드문 찾아서 읽었고 그것도 점점 흐지부지 해졌다. 저번달에 받은 과학동아를 거의 읽지도 못했는데 다음 호를 받기도 했다. 다 읽은 척하고 돌려주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학 첫 여름방학, 집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소포가 하나 왔다. 누런 서류봉투 같은 거였는데 아빠에게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수신인에 낯선 글씨체로 내 이름이 쓰여있었다. 그때는 택배가 아니라 소포였다. 우체국에 물건을 가지고 가서 직접 포장해서 물건을 부치는 방식이었고, 우체국 집배원이 직접 배달을 해주셨다. 어지간해선 소포가 오는 일은 없었다. 발신인은 누구더라...... 바로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었다.
도톰한 서류봉투에서는 뜻밖의 물건이 나왔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8월호 과학동아였다.
그리고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그 애였다. 잘 지내는지와 아직도 이 잡지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맨질맨질한 잡지표지의 감촉과, 특유의 하얗고 각진 폰트의 과학동아라는 글자는,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들을 순식간에 되살려냈다. 연락하고 싶었는데 번호가 없었다고, 주소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그리고 폰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놀라겠지만 그때 나를 좋아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 했다. 좋은 추억이 되어줘서 고맙다 했다. 우리 학교 앞을 지날 일이 많은데 시간이 되면 한번 만나자 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정신이 차려졌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게도 소중한 추억이었다. 오래전 날 떠올려준 것이 고맙고, 잡지를 직접 사서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부쳤을 생각에 너무 감동이었다. 그렇지만 웬일인지. 만난다는 것은 망설여졌다.
며칠간 마음 한편에 밀어두었다가 결국 적혀있던 번호로 연락을 했다. 잡지 잘 받아보았다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만나자는 제안에는 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둘러댔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연락 주겠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불편해 할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좋은 추억이 너무 많은 고마운 친구로 그냥 그 기억으로 남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거절할 말을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 특유의 무신경함과 무심함으로 곧 이 일을 잊어버렸다. 휴대폰을 사면서 번호가 바뀌었고, 영영 잊고 지내버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관계에 좀 더 능숙해졌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전엔,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를 어찌할 줄 몰라 도망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나 마무리는 어려웠다. 서툴게 끝내거나 때론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놔두었다. 그냥 내버려 둔 관계는 그런 관계대로 의미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때는 그런 상태 자체가 불편해서 괴롭기도 했다. 결국 서툰 내 행동과 태도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우연히 과학동아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내 생각을 전하지 못한 그때의 불편한 마음과 형편없었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때 만났어야 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좋은 마음으로 손 내밀어 준 친구를 그깟 불편함 때문에 회피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내 생각을 전할 일이 생긴다면 내가 마지막까지 비겁했다고,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