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에 대하여
최근 여러 마라톤 현장을 오가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마라톤 MC의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MC의 핵심 역량이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을 경험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런데 마라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말솜씨보다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참가자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현장을 읽고, 흐름을 만들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마라톤 현장은 변수의 연속이다.
당일 내빈 일정이 바뀌고, 운영 계획이 수정되고, 예상했던 흐름과 다른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처음 MC를 맡았을 때는 이런 변화들이 당황스러웠다.
왜 이렇게 계속 바뀌지?
왜 미리 정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장을 반복해서 경험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변수는 예외가 아니라 현장의 일부였다.
이제는 변수가 발생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현재 상황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유연함은 현장을 오래 경험할수록 생기는 능력이 아니라, 현장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다.
유연함이 생기니 마음의 여유도 커졌다.
덕분에 운영진과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현장을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화장실은 어디에 있을까?
물품보관소는 어디일까?
출발 전에 무엇을 알아야 할까?
참가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참가자의 경험은 시작부터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행사장에 도착하면 참가자의 동선을 먼저 확인한다.
어디서 배번을 받는지,
물품 보관은 어떻게 하는지,
출발 전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
MC는 마이크를 잡기 전에 먼저 참가자가 되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가자의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더 좋은 안내가 가능해진다.
참가자들이 혼란 없이 출발했다면 성공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어떤 준비가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그게 가장 좋은 결과다.
좋은 진행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참가자들이 불편함 없이 자신의 도전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최근 6,000명 규모의 대회를 진행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화려한 멘트가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혼란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당시 참가자들은 기록에 따라 출발 그룹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배번에는 그룹 구분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현장에 처음 온 참가자라면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출발 전부터 여러 차례 그룹 안내를 반복했다.
A그룹과 B그룹 중 어느 곳에 서야 하는지,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해서 안내했다.
운영진과 스태프분들이 함께 안내를 도와주신 덕분에 참가자들은 큰 혼선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런 과정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좋은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이 불편함 없이 자신의 도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자연스러움을 만들기 위해 운영진과 스태프들은 수많은 준비를 한다.
그리고 MC 역시 그 흐름 안에서 참가자와 현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좋은 MC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참가자들을 돕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대본에 적힌 순서와 시간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바로 현장의 흐름이다.
대본은 기준점이 될 수 있지만, 현장은 늘 살아 움직인다.
참가자들의 준비 상태, 운영 상황, 현장의 분위기.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며 진행 방향을 조정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대본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원활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좋은 MC는 정해진 순서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의 흐름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라톤 MC를 하며 가장 흥미롭게 발견한 점 중 하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이다.
다만 먼저 나설 이유가 필요할 뿐이다.
함께 박수를 치고,
옆 사람과 인사하고,
응원하고,
사진을 찍고,
축하하는 것.
MC가 자연스럽게 명분을 만들어주면 참가자들은 기꺼이 움직인다.
그 순간 현장의 에너지는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MC의 역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그것 또한 MC의 중요한 능력이다.
마라톤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록이 좋은 선수들에게 시선이 쏠린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조금 다르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참가자를 맞이하는 순간이다.
기록은 다를 수 있다.
페이스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섰고,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을 이어왔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주자가 들어올 때까지 현장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마라톤은 순위를 겨루는 경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자의 도전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금은 참가자들이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최근 한 러너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찐파워는 마라톤 대회를 축제로 만드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현장은 어떤 현장일까.
기록을 위해 달리는 사람도,
첫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도,
가족과 함께 참여한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현장.
잠시 일상의 고민을 내려놓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현장.
도전이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현장.
앞으로도 그런 에너지를 만드는 MC가 되고 싶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도전에 찐파워를 더하는 MC, 찐파워입니다.
- MC 찐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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