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대학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모교에서 행사가 열려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한 원어민 선생님을 처음 만났고, 그분이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용기를 내어 영어로 말을 걸었다. “How do you come to Korea?”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은 “Why did you come to Korea?”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By airplane?” 그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고, 후배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돌이켜보면 더 부끄러웠던 것은 내가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고, 수능 영어를 준비했으며, 문법과 어휘와 독해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외국인이 나타나자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거의 없었다. 더욱 난처했던 것은 그 자리에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후배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갑자기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날의 경험은 내게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남았다. 나는 영어를 공부했는데 왜 영어로 말을 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이후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학교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토플 새벽반 수강권을 끊고 아침 일찍 강의실로 향했다. 문법을 공부하고, 리딩을 하고, 리스닝을 하고, 단어를 외웠다. 영어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하나씩 나누어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어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는 것과 영어로 말을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문제를 풀 수는 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고, 문장을 읽을 수는 있는데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그때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이 영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능력이 아니라 영어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느꼈던 갈증은 단순했다. 나는 영어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영어 공부에는 정작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문법을 분석하고, 지문을 읽고, 단어의 뜻을 외우고,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는 동안 나는 영어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경험은 충분히 하지 못했다. 언어는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용되는 것인데, 나는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면서도 언어를 시험지 위에서만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부터 나는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정말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 영어 공부법과 관련된 바카라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도서관에 머물면서 열몇 권의 바카라을 읽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당시의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바카라이 정찬용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바카라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 영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 바카라이었다. 영어를 지나치게 공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먼저 영어의 소리에 충분히 노출되고 그것을 반복해서 듣고 익히라는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영어를 들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한 번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계속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하나의 덩어리처럼 들리던 소리가 단어와 문장으로 나뉘어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충분히 들은 다음에는 들리는 내용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받아 적은 문장을 다시 소리 내어 읽고, 마지막에는 원어민의 발음과 억양과 속도를 따라 하며 쉐도잉을 했다. 듣고, 받아 적고, 따라 하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순한 과정을 지독할 정도로 반복했다.
하루에 강의가 끝나면 오후 4시나 5시, 때로는 6시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다시 영어를 붙잡았다. 저녁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네 시간 정도를 영어 듣기와 받아쓰기와 쉐도잉에 썼다. 졸리면 캠퍼스를 걷고 또 걸으며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결국 거의 1년을 그렇게 살았다. 당시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다시는 외국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절실했기 때문에 계속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세트테이프의 A면과 B면에 있는 내용을 상당 부분 외워버렸다. 단순히 문장의 뜻을 외운 것이 아니었다. 원어민이 어떻게 발음하는지, 어디에서 끊는지, 어떤 단어에 강세를 두는지, 어떤 속도로 말하는지까지 거의 노래처럼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외웠던 문장 가운데 일부는 기억한다. “I need to fix my car as soon as possible.”라는 문장을 떠올리면 문장의 의미뿐 아니라 당시 카세트테이프에서 들었던 원어민의 목소리와 억양까지 함께 떠오른다. 영어가 머릿속에 지식으로 저장된 것이 아니라 귀와 입과 몸에 저장된 것이다.
그리고 1년쯤 지나 나는 다시 그 원어민 선생님을 찾아갔다. 대학 1학년 때 “How do you come to Korea?”라고 물었다가 “By airplane?”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분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표현할 수도 있었다. 문장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조립한 뒤 어렵게 내뱉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영어가 ‘공부해서 아는 것’과 ‘몸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 경험은 훗날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후 해외 거래처와 거래하는 바이어로 17년 이상 일하게 되었다. 외국의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협상을 하고, 전화와 이메일로 소통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속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며 거래를 이어가야 했다. 그때마다 영어는 시험 과목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일을 오랫동안 해낼 수 있었던 토대는 바로 대학 시절의 그 영어 공부에서 만들어졌다. 대학 시절의 뼈저린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영어를 시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경험 덕분에 이후 17년 이상 해외 거래처와 거래하는 바이어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외국어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문법도 중요하고, 어휘도 중요하고, 리딩과 라이팅도 중요하다. 문법을 알면 문장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어휘가 풍부하면 더 넓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으며, 독해 능력이 갖춰지면 외국어로 쓰인 깊이 있는 지식과 사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문법과 독해와 글쓰기가 외국어 능력을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뼈대가 된다. 문제는 그것들이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순서로 주어지느냐에 있다.
나는 우리가 외국어 학습의 순서를 조금 뒤집어 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문법을 가르치고 단어를 외우게 하고, 어려운 지문을 읽게 하고,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은 언어의 본질과 조금 어긋날 수 있다. 모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문법바카라부터 펼치지 않는다. 아이는 먼저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소리를 흉내 내고, 한두 단어를 말하고,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면서 언어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말을 듣고 사용하면서 언어의 감각이 생기고, 그 위에 읽기와 쓰기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런데 외국어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아직 외국어로 간단한 생각조차 말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긴 문장을 읽게 하고, 문법 규칙을 설명하고, 문제를 풀게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시험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언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걷기도 전에 달리기를 가르치는 것처럼, 말의 기초가 충분히 만들어지기 전에 글을 통해 높은 수준의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특히 리딩이라는 능력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어 단어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복잡한 문장 구조를 이해하고, 문맥을 파악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받아들이고, 글쓴이의 생각을 자신의 사고 속에서 재구성하는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이다. 따라서 충분한 언어적 기반 없이 어려운 영어 리딩을 시키면 아이들은 언어 자체를 경험하기보다 문제를 푸는 기술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영어가 사람과 소통하는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정답을 찾아야 하는 하나의 과목이 되어버릴 수 있다.
물론 나는 문법과 독해 중심의 교육을 모두 버리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서를 바꾸자는 이야기에 가깝다. 초보 단계에서는 영어를 많이 듣고, 듣는 소리를 따라 하고, 짧은 표현이라도 직접 말해보고, 영어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경험을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 그 위에 문법이라는 뼈대를 세우고 어휘를 확장하며, 점점 더 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듣기와 말하기가 몸이라면 문법과 어휘와 독해와 글쓰기는 그 몸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뼈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틀린 문장을 말해도 괜찮고, 발음이 서툴러도 괜찮고,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언어는 틀리지 않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영어로 “I want this”라고 말했을 때 문법적 오류를 찾아내기 전에 그 아이가 처음으로 외국어를 사용해 자신의 욕구를 표현했다는 사실을 기뻐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영어가 시험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라는 경험이 쌓일 때, 영어는 비로소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
생각해보면 나의 영어 공부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훌륭한 학습법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실패였고, 부끄러움이었다. “How do you come to Korea?”라는 엉뚱한 질문과 “By airplane?”이라는 대답은 당시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실패가 나에게 영어를 다시 배우게 한 가장 강력한 사건이었다. 그날의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영어를 다시 시작했고, 카세트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영어의 소리를 몸에 새겼고, 그렇게 익힌 영어는 훗날 17년이 넘는 해외 거래처와의 업무 속에서 실제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어를 너무 공부하려고 하지 말라고. 먼저 영어를 들어보라고. 많이 듣고, 소리를 따라 하고, 입으로 말해보라고. 틀려도 좋으니 영어로 누군가와 만나보라고. 그리고 어느 정도 영어가 몸에 들어오면 그때 문법과 어휘와 독해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언어를 더 정교하게 다듬어가면 된다.
어쩌면 외국어를 잘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언어와 함께 살아보는 것, 그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영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번의 실수에서, 한 번의 부끄러움에서, 그리고 그 실패를 이겨내고 싶었던 한 청년의 절실함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대학 시절의 뼈저린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그 실패 덕분에 나는 영어를 삶 속에서 배우는 법을 알게 되었고, 그 경험은 나를 17년 이상 세계의 사람들과 거래하고 소통하는 바이어의 삶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영어도 바로 그런 영어인지 모른다.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기 위한 영어가 아니라, 한 사람을 만나고, 한 세계를 만나고,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건네기 위한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