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보험금으로 계산된 133명의 목숨

터너-노예선

byJUNI KANG

사람을 살려두면 손해였고, 바다에 던지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작품 정보]

작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영국)
작품명: 노예선(Slave Ship /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Typhoon Coming On, 1840)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90.8 × 122.6cm

소장처: 미국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J.M.W._Turner_Slave_Ship_(_Slavers_Throwing_Overboard_the_Dead_and_Dying,_Typhoon_Coming_On)._1840.png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Slave Ship. 출처: Wikimedia Commons, CC0


1781년, 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로 향하던 영국 노예선 종(Zong)호에는 약 470명의 아프리카인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배의 소유주와 보험회사에는 그랬습니다.

그들은 돈을 주고 산 ‘화물’이었고, 다른 상품처럼 보험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항해 도중 질병이 퍼지면서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선장은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경우 자신들이 입을 손실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보험 조건이었습니다.


노예가 병으로 죽으면 소유주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배 전체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화물을 바다에 버린 경우에는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물이 부족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계속 배에 태우고 있다가 병으로 죽으면 돈을 잃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던지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사흘에 걸쳐 133명의 아프리카인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사건이 더욱 끔찍한 것은 그다음에 벌어진 일입니다.

배가 자메이카에 도착한 뒤 소유주들은 사람을 죽인 죄로 법정에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보험회사가 지급을 거절하자 오히려 소유주들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783년 런던에서 열린 재판의 쟁점은 133명을 죽인 것이 살인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바다에 버린 것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정당한 ‘화물 손실’인가였습니다.


첫 재판에서는 배의 소유주들이 승소했습니다. 이후 항소 과정에서 선원들의 항해 과실과 식수 부족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재심이 명령됐지만, 살인 혐의로 처벌받은 선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람의 죽음이 재판정에서 보험금 계산으로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노예제 폐지운동가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노예 출신 작가 올라우다 에퀴아노가 사건을 알렸고, 그랜빌 샤프는 선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image.png바다에 던저진 채 허우적 거리는 손들, Slave Ship 부분확대

그러나 종호 사건은 사람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노예무역의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고, 영국의 노예무역 폐지운동에도 강력한 논거를 제공했습니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대부분에서 노예제를 폐지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60년 뒤, 터너가 이 사건을 다시 꺼냈습니다.

1840년 런던에서는 국제적인 노예제 폐지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터너의 <노예선>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공개됐으며, 보스턴 미술관은 이 작품을 대서양 노예무역의 참상을 고발한 강력한 시각적 주장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림을 처음 보면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입니다.

태양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고, 검붉은 구름이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바다는 노란빛과 붉은빛, 검은빛이 뒤섞여 뒤집히고 있습니다.


멀리 배 한 척이 보입니다.

돛을 올린 채 폭풍을 피해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면 아래를 자세히 보는 순간 그림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 위로 사람의 다리 하나가 솟아 있습니다.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왼쪽 바다에도 손과 발처럼 보이는 검은 형체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주변에는 물고기와 새들이 몰려듭니다.

터너는 노예들이 바다에 던져지는 순간보다 배가 이미 그들을 버리고 떠난 뒤를 그렸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화면 뒤편으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만 관람객 바로 앞에 남았습니다.

image.png쇠사슬이 묶인 사람의 다리. Slave Ship 부분학대


그래서 우리는 멀어지는 배가 아니라 바다 속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폭풍입니다.

배가 향하는 쪽에는 거대한 태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터너의 바다에서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자연의 폭력이 하나로 뒤엉킵니다. 노예선은 사람들을 바다에 던지고 달아났지만, 자신들 역시 거대한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스턴 미술관 역시 이 작품을 인간의 폭력과 자연의 폭력이 동시에 충돌하는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터너는 사람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남자이고 여자인지,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종호 사건과 닮아 있습니다.


재판 기록에서도 희생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몇 명의 ‘화물’이 손실되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림 속에서도 사람의 몸은 파도와 피, 물고기 사이에서 형태를 잃어갑니다.

그러나 터너는 바로 그 모습으로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상품이라고 기록된 것이 정말 상품이었는가.

쇠사슬 끝에 달린 것은 짐짝이 아니라 사람의 다리입니다.

보험회사가 계산한 것은 돈이었지만, 바다에 가라앉은 것은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림을 멀리서 보면 강렬한 노을과 폭풍을 그린 아름다운 바다 풍경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야 쇠사슬과 손발이 보입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더욱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색채 속에 학살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당시 노예무역 자체와도 닮았습니다.

유럽에는 설탕과 면화, 커피와 막대한 이익이 도착했습니다.

그 풍요 뒤에 어떤 사람들이 쇠사슬을 찬 채 바다를 건넜는지는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18세기 런던의 금융과 보험 산업 역시 노예무역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종호의 선원들은 사람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의 소유주는 보험금을 요구했습니다.

법정은 죽음보다 보험 계약을 먼저 따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60년 뒤 터너는 그 계산에서 지워졌던 사람들을 다시 바다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얼굴도 이름도 그려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쇠사슬이 채워진 한쪽 다리를 화면 가장 앞에 남겼습니다.


누구도 그것을 ‘화물’이라고 부를 수 없도록 말입니다.


이제 그림을 다시 보세요. 멀리 달아나는 노예선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화면 아래 쇠사슬이 채워진 다리입니다. 보험금으로 계산된 것은 화물이 아니라 살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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