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압생트
[작품 정보]
작가: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
작품명: 압생트 (L’Absinthe / Dans un café, 1875~1876), 캔버스에 유채, 92 × 68.5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Paris)
그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압생트(L’Absinthe)’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압생트는 19세기 프랑스, 특히 파리의 카페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독한 술입니다. 쓴쑥과 아니스, 회향 같은 향신료를 넣어 만들었고, 물을 타면 초록빛이 뿌옇게 흐려져 사람들은 이 술을 낭만적으로 ‘녹색 요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별명과 달리 압생트는 중독, 환각, 타락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훗날 슬롯를 병들게 하는 위험한 술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드가의 그림 속 작은 연녹색 술잔은 단순한 술잔이 아닙니다.
그 잔 안에는 화려한 파리의 낭만과, 그 낭만 뒤에 숨어 있던 고독과 중독의 그림자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제 드가의 그림 <압생트>를 보겠습니다.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압생트'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카페에서'였습니다.
프랑스어로는 'Dans un café'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그림을 그냥 ‘카페 풍경’으로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여자 앞에 놓인 연녹색 술잔 하나를 붙잡고, 이 그림 전체를 <압생트>라고 불러버렸습니다.
제목이 바뀌자 그림의 운명도 바뀌었습니다.
카페에 앉은 두 사람의 장면은, 어느새 알코올 중독과 타락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림 속 여자는 단지 카페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녀를 술에 절어 무너진 여자처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처음부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 보여준 진짜 현실이 불편했던 것이겠지요.
19세기 후반의 파리는 화려했습니다.
넓은 대로가 뚫리고, 가스등이 켜지고, 카페와 극장과 백화점이 번성했습니다.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고 거리를 걸었고, 예술가들은 밤마다 카페에 모여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낭만의 도시 파리’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빛나는 도시일수록 어두운 구석은 더 짙어집니다.
카페는 근대 도시의 사교장이었지만, 동시에 외로운 사람들이 하루의 피로를 술잔 속에 묻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파리 사람들은 압생트를 즐겨 마셨습니다.
녹색 요정.
이름만 들으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카페에 앉아 초록빛 술을 마시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비웃는 예술가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드가의 그림 속 녹색 요정은 아름다운 날개를 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 요정은 여자의 어깨를 감싸주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고독을 덜어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사람의 안쪽을 비워가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봅니다.
여자는 화면 가운데에 앉아 있습니다.
몸은 앞으로 조금 꺼져 있고, 어깨는 힘없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멍합니다. 눈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 앞에는 연녹색 압생트 한 잔이 놓여 있습니다.
잔은 작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은 술잔이 그림 전체를 지배합니다.
여자의 얼굴보다, 낡은 옷보다, 지친 자세보다 그 잔이 먼저 보입니다. 마치 이 여자의 하루가, 마음이, 삶이 저 작은 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옆에는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검은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오른쪽 바깥을 바라봅니다. 그는 여자 쪽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를 보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은 분명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게 이 그림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둘은 가까이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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