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의 장수, 백가지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
후두염으로 인한 터져 나오는 기침이 겨우 가라앉나 싶더니 이번에는 소화가 안 된다. 먹는 것마다 얹힌다. 어젯밤에는 나올 것도 없는 토악질을 여러번 했다. 아침은 그 덕에 걸렀고, 점심때는 괜찮은 것 같아서 조심조심 먹었는데 결국 모두 게워냈다. 얼굴로 쏠리는 피에 얼굴에 맺히는 뾰루지 같은 게 보인다. 더워서 땀이 나나 했는데 식은땀인가 보다. 몸이 왜 이러나 싶다가,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긴장하고 신경을 쓰면 위가 굳는다. 참 잔병부자로구나.
부친의 섬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섬망은 좀 무섭다. 이번 주 생신 기념 면회를 빼고, 불러서 간 것이 오늘 아침까지 두 번째다. 부친을 5일 사이 세 번을 봤다. 이러다 깊은 정들겠다. 막상 가면 아무 일이 없다. 다만 내가 갈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성질도 나빠진다. 말 그대로 어떤 종류의 시위다. 일조량이 달라지는 환절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작년에도 이맘때였으니 한번 시작되면 잦아들 때까지는 이런저런 진통이 있다. 어릴 때 배를 곯아본 사람이기에, 배고픈 것을 잘 못 참는다. 평생 그랬다. 화가 나도 슬퍼도 나는 부친이 끼니 거르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은 전과 다른 양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전화를 받고, 덮어놓고 간다. 가도 해결될 것이 없다는 걸 안다.
전주에 갔을 때, 일정을 끝내고 경기전에 들러 둘러보다 어진박물관까지 들어갔다. 거기서 자개로 백수백복(百壽百福)을 새긴 장을 봤다. 임금님 장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이었는데 과연 임금이 썼을 법한, 꽤나 으리으리한 것이었다.
백수백복도는 그림이 아니라 문자도(文字圖)다. 백과사전의 정의는 이렇다. "장수長壽와 복福을 기원하기 위해 '수壽', '복福' 글자를 반복하여 화면을 구성한 문자도." 기본 서체는 주로 전서(篆書)이고, 거기서 다양하게 변화된 잡체전(雜體篆)을 쓴다. 여러 서체를 섞어 쓰는 잡체서의 전통이 백수도의 전통과 섞이면서 지금의 구성이 되었다고 한다. 장수를 기념하는 잔치에 병풍으로 세우거나,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주고받는 선물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록의 처음은 1610년, 광해군 2년이다. 남평 현감 조유한(趙維韓)이 중국인에게 받은 백수도(百壽圖)를 임금에게 바쳤다. 그때의 백수도는 '수' 자를 크게 하나 쓰고, 그 획 안쪽에 다시 '수' 자를 수백 개 채워 넣은 형태였다고 한다. 서체도 한 가지가 아니었다. 과두, 전서, 주문, 충서, 학서, 구인. 벌레와 새와 지렁이의 이름을 붙인 글씨들이다. 큰 글자 하나 안에 작은 글자 수백 개가 들어 있는 그림. 임금에게 바치기에 이보다 적절한 물건은 없었을 것이다.
조유한은 1588년에 태어나 1613년에 죽었다. 스물다섯 해를 살았다. 이십 대 초반에 임금께 백수(百壽)를 바치고, 그로부터 몇 해 뒤에 죽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십대의 젊음을 제물로 광해군은 얼마를 더 산 걸까.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백수백복도의 글자는 실제로 백 개가 아니어도 된다. 백과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백百'은 숫자로서의 100보다는 '많다, 꽉 차다, 가득해서 족하다'는 의미이다." 백은 개수가 아니라 관용이다. 세어본 적 없이 족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끔 지인들과 부모님 근황을 나누게 되는데 몇 년생이신데 아직 운전을 하신다든지, 매주 산에 가신다든지, 주말마다 손주를 봐주신다든지 하는 이야기들. 듣고 있으면 나는 자동으로 계산을 한다. 부친은 나를 다소 늦게 낳았고 다소 일찍 아프게 되셨다고 해야겠다. 뭐라고 할 것도 아닌 것이 나는 이미 부친이 나를 낳은 나이보다 한참 더 먹었다.
오늘은 교수님 면담이 일찍 끝나 돌아와 작업실에 앉았다가 문득 백수백복을 돌에 새겨볼까 싶은 이상한 생각을 한다. 그를 위해 삼백육십오수 삼백육십오복을 바라여 본다면 어떨까. 하루치의 안녕을 하루치씩 빌어본다면. 내일 아침에 부친이 또 나를 불러제낀대도 위를 괴롭히지말고 그 날치 한 자를 새기자. 칼을 잡은 손끝에 날카롭고 잘 가라앉지 않는 기운이 모인다면, 그것으로 작지만 단단한 돌을 깨부숴가며 마음을 깎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