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림에 익숙해지려면

byJuneK


개강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강의실에서 한 번, 맥주집에서 또 한 번 가방을 열었다 닫았으니 둘 중 한 곳일 것이다. 파우치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다음 날 오전에 알았다. 화장을 할수록 어쩐지 촌스러워지는 얼굴이라 입술정도를 바르는데 가방 안쪽을 더듬다가 뭔가 허전하다. 전날 다녀온 자리를 순서대로 떠올렸다. 일단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으니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정해진 일정 먼저 소화할 생각으로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어 김포에 다녀왔다. 거기서도 잡혀서 일 얘길 하다 겨우겨우 전각 수업을 갔다. 오가는 동안에도 머리로는 전날의 동선을 복기해 보았다. 사무실엔 없었고 점점 불안해진 나는 강의실 바카라상 아래와 화장실, 맥주창고의 긴 나무 테이블을 번갈아 떠올렸고, 어느 쪽에도 확신이 없었다. 애꿎은 동료의 귀한 주말 시간을 잘라먹고는 같이 학교도 가봤지만 소득 없이 돌아왔다.


화장알못에게도 파우치가 없어지는 일은 철렁하는 사건이다. 남들에겐 소중하지 않을지 모르는 하나하나 사소한 것들. 선물 받아 컬러넘버도 모르는 립들, 애써 찾은 향수 미니 버전, 이제는 단종된, 모든 아이라이너가 번지는 외꺼풀에게 유일하게 안 번지는 아이라이너, 노화를 늦추겠다며 뭐 기능성이 들어가 있다는 향만 좋은? 출장길면세에서 무리해서 산 고오급 미스트.


제일 속이 쓰린 일은 독립 후 첫 프로젝트 잔금을 받아 산 귀걸이를 어쩐지 어느 저녁자리에서 귀가 무거워 빼놓고 파우치에 아무렇게나 넣었던 일. 귀한 물건일수록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말이고, 아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제일 못하는 일.

이렇게 사연도 미련도 많은 짐들을 잔뜩이고 지고 사는 삶에 자유가 무에요.


잠시잠깐 블러의 커피 앤 티비처럼, 음악 하겠다고 집 나간 아들 찾으러 밀크맨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미스트 몸통에 귀걸이 팔을 달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미스트맨을 상상해 보았다.


https://youtu.be/6oqXVx3sBOk?si=2OSH1gFZ4in4Fli1​


이 김에 무소유를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