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나희덕의 시집 중

by기백

나희덕의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를 읽고.


시집 제목은 『시와 물질』

눈 덮인 산에서 시작된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 평평하게 만든다. 돌과 나뭇가지, 짐승의 배설물과 오래된 발자국까지 흰색 아래에서 잠시 같은 표정을 갖는다. 덫도 그 속에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덫은 안전한 길과 다르지 않다.

화자는 산을 오르다가 발목이 덫에 걸린다. 철컥, 하고 닫히는 순간까지 그곳은 그저 눈길이었을 것이다. 몇 걸음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계였다. 간신히 덫을 풀고 산을 내려오지만, 다친 발목에서는 피가 흐른다. 화자는 절뚝거리다 뒤를 돌아본다.

자신이 지나온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서늘했다.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보다 상처가 지나온 길을 뒤늦게 보여준다는 것. 걷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뒤돌아본 순간, 재상되는 상처. 나는 여기서 다쳤고, 이만큼 피를 흘렸으며, 이 방향으로 살아 나왔다.

피는 몸 밖으로 나온 뒤에야 흔적이 된다. 그리고 화자는 말한다.

나에겐 반전.


"그 후로 내 속에는 두렵고 상처 입은 짐승이 살아요"

이 시를 상처에 관한 시라고만 읽는다면, 이 짐승은 다친 마음의 은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 이 짐승은 상처보다 오래된 존재로 느껴진다.

상처 때문에 새로 생겨난 짐승이 아니라, 덫을 밟은 순간 비로소 깨어난 짐승.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 웅크리고 있던 몸.
아프면 비명을 지르고, 위험 앞에서 털을 곤두세우며, 죽지 않기 위해 제 살을 당겨 빼내는 존재.
말과 품위와 슬롯적 지위를 모두 벗겨낸 뒤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생물의 몸이다.

우리는 대개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이름과 직업과 관계와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믿는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다른 생명의 살을 자르고 굽고 씹으면서도 자신이 고기일 수 있다는 생각은 없다. 식탁 위의 고기와 나의 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선이 있다고 확신하는 오만.


이 시는 각주에 덧붙인 것처럼 나희덕 시인이 빌 플럼우드의 『악어의 눈』을 읽고 지은 듯 하다. 철학자인 발 플럼우드는 『악어의 눈』에서 그 선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악어의 눈앞에서 플럼우드는 더 이상 세계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인간이 아니다. 육즙이 흐르는 하나의 몸이다. 악어는 인간의 이름을 읽지 않는다. 그가 철학자라는 사실도,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왔는지도 알지 못한다. 악어의 눈에 인간의 삶과 이력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물가 가까이에 놓인 살과 뼈, 물어뜯을 수 있는 몸뿐이다. 그 눈은 잔인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너무 정확해서 두렵다.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해온 특별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써 쌓아 올린 인간 중심의 세계를 단번에 지나쳐, 몸의 가장 오래된 사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당신도 먹힐 수 있다. 당신도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피와 살을 가진 존재다.


『악어의 눈』을 거울처럼 세워두고 다시 시를 읽으면,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의 덫은 단순히 한 사람에게 일어난 불운으로 머물지 않는다. 덫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눈 덮인 산을 걷는 동안 화자는 자신을 산길의 주인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길을 선택하고, 목적지를 정하고, 풍경을 바라보는 존재. 그러나 덫이 닫히는 순간 관계는 뒤집힌다. 걷던 사람은 붙잡힌 짐승이 된다. 세상을 보던 눈은 자신을 노리는 세계를 보게 된다. 이 시의 제목이 ‘덫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빨 앞에서는 이름이 먼저 사라진다. 내가 누구인지,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는지,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는 이빨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빨은 몸을 향한다.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향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만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자부심이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하는 순간, 나 역시 찢기고 삼켜질 수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다른 생명의 두려움과 나의 두려움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감각이 두렵다.


상처 입은 짐승은 내 안에서 계속 숨을 쉰다. 안전하다고 믿는 순간 귀를 세우고, 눈 아래 감춰진 덫의 냄새를 맡는다. 그 존재는 삶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덜 잔인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이빨 앞에 놓일 수 있다. 질병 앞에서, 사고 앞에서, 시간 앞에서, 사랑이 거두어지는 순간 앞에서. 나보다 큰 힘이 입을 벌리면, 인간이라는 단단한 외피는 생각보다 쉽게 벗겨진다.

그때 드러나는 것은 영웅도 패배자도 아니다. 살고 싶어 떨고 있는 한 마리의 짐승이다. 눈 위에 찍힌 피 묻은 발자국은 화자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증거다. 상처 입을 수 있었고, 피를 흘렸으며, 그럼에도 산을 내려왔다는 증거다.


어쩌면 "인간다움"은 우리가 짐승이 아니라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도 짐승이 산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떨었던 몸으로, 다른 생명의 떨림을 알아보는 일. 그것이 덫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걷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