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음
당신의 끝인사 같았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하고. 행복하자—
대화방 밖에서 보이는 문장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는 내용. 그 겉면에 도착한 문장은 봉투를 열어보지 않아도 됐다.
가지런히 누운 그 글자들 곁에는 1이라는 숫자가 완강하게 박혀 있었다. 그 '1'이 우체국 도장 같아서,
누르면 접수가 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앞에서 손을 씻은 사람처럼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까딱하다가 아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성벽. 웅크린 채 그 작은 숫자가 지켜내고 있는 팽팽한 정적 같은 성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받는 사람이 읽지 않으면, 끝 인사를 받지 않는 것. 서명하지 않으면, 그 어떤 효력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이 인사를 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결별은 없는 것이 될 터였다. 누르는 순간 내 손으로 이별을 접수하고 서명하는 꼴이 되니까, 나는 끝내 그 숫자를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나의 사랑을 유예하기로 했다.
화면을 뒤집어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네 얼굴이 지문처럼 투명하게 묻어났다. 빛을 모두 끈 방 안에서, 나는 지워지지 않는 글자들과 숫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저녁을 넘어 밤을 넘어, 새벽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그 작은 숫자 하나가 우리 사이를 붙잡고 있는 한, 나는 계속 수취인 불명으로 남을 것이다. 읽지 않으면 인사를 안 받는 것이고, 인사를 받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이별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