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조롱하는 슬롯, 우리는 어디까지 무너졌나

배재고 야구부의 응원을 보고

by기백

광주를 조롱하는 슬롯, 우리는 어디까지 무너졌나


-기억을 모욕하지 말라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유혈(流血)의 기억이다. 그날의 비명은 영겁의 시간 속에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맥박 속에서 여전히 서늘하게 요동치는 현재진행형의 통증이다. 그날의 피는 과거 속에 고여 있지 않고, 지금도 누군가의 입에서 희화화되는 순간마다 울컥울컥 다시 현재로 쏟아진다. 그러나 우리 슬롯의 어떤 구석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가장 깊은 고통을 채굴해 조롱이라는 값싼 유흥으로 바꾸어 먹는 기괴한 연금술이 멈추지 않고 있다. 타인의 피눈물을 농담의 제물로 삼는 그 야만적인 웃음소리 앞에서, 밀려오는 것은 분노보다 먼저 온몸을 감싸는 지독한 수치심이다. 그것은 우리 슬롯의 윤리적 지표가 통째로 마모되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는 참담한 자백과 다름없다.


최근 배재고 야구단 내부에서 터져 나온 광주 비하 응원구호 논란은, 철없는 아이들의 스쳐 지나가는 ‘장난’이라는 가벼운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살은 지독히도 어둡다. 그것은 개인의 일탈이라는 우연의 점이 아니다. 대놓고 증오를 말하기 전에 먼저 웃음의 형태를 빌리고, “다들 웃고 넘기는데 왜 예민하냐”는 말로 숨어버리는 혐오의 생리다. 그 무바카라임한 방조 속에서 무감각은 자라고, 무감각은 곧 폭력의 습관이 되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옮겨간다.



첫 번째 붕괴: 닫힌 성벽, 운동부의 일그러진 토양


혐오는 언제나 대낮의 광장보다는 음습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학교 운동부라는 특수한 생태계는 종종 선후배 간의 절대적 규율과 집단주의라는 두터운 성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에서 비판적 성찰은 거세되고, 동질성을 증명하기 위한 자극적인 언어들이 날것 그대로 공유된다.


이번 사건은 운동부 문화의 폐쇄성과 승리 지상주의가 어떻게 집단적 무감각을 길러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료들과 발을 맞추고 구호를 외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뱉어내는 언어가 지닌 잔혹한 무게를 망각했다. 타인을 짓밟음으로써 팀의 결속을 다지는 일그러진 연대의식, 학생들의 입을 빌려 터져 나온 그 구호는 학교의 분위기와 팀 안의 서열이라는 양분 속에서 길러진 괴물이다.


두 번째 붕괴: 상아탑의 침묵과 교육청의 안이함


학교는 지식의 시장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지 배우는 성소(聖所)여야 한다. 그러나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를 가르쳐야 할 교육의 현장은 정작 혐오가 스며들 때마다 차가운 방관자로 돌변하곤 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라는 변명은 교육의 직무유기를 가리는 가장 비겁한 면죄부다. 미래가 있는 아이들이기에 현재의 일그러진 좌표를 더 엄정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 교육의 바카라무 아닌가. 학교의 방임과 교육청의 안이하고 굼뜬 사후 대처는 아이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장난’, 혹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해프닝’이라는 최악의 학습 효과를 남길뿐이다. 침묵으로 동조하고 빈틈을 허용한 어른들이야말로 이 잔인한 유희의 공범들이다.


세 번째 붕괴: 온라인의 독무대와 무뎌진 슬롯적 감수성


이 비극적인 조롱의 뿌리는 결국 학교 담장 너머, 우리 슬롯 전체가 소비해 온 일상적 혐오의 문화와 닿아 있다. 디지털의 익명성 뒤에 숨어 지역을 찢고, 약자를 조롱하며, “별일 아니지 않느냐”며 가벼운 농담처럼 소비해 온 슬롯 전체의 인지 감수성이 아이들의 언어를 오염시켰다.


광주를 향한 조롱은 단순히 특정 지역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무거운 장면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 국가폭력의 기억을 품은 이름을 통째로 모욕하는 일이다. 그 이름을 비웃는 언어는 결국 우리의 기억과 감각, 그리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최소한의 품위와 도덕적 바닥을 함께 흔들어 깨부순다.




끝으로


이제 곧 프로구단의 스카우트가 걸려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온정주의가 고개를 들 것이다. 가해자의 인권을 앞세우고, 되려 평판의 피해자라며 동정 여론으로 물타기 하려는 비겁한 흐름도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비난이 두려워, 혹은 아이들의 미래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하는 표정으로 내놓는 사과는 결코 사과가 아니다. 사과란 처분을 피하려는 임시방편의 언어가 아니라, 어떤 바카라임과 대가도 감수하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평판을 지키기 위해 현재를 지우려는 태도는 추악한 자기 보호일 뿐이다.


부패는 도려내지 않으면 뼈를 녹이고 살을 썩히며 온몸으로 번져간다. 혐오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몇 마디 농담처럼 보이지만, 슬롯가 그것을 묵인하고 침묵하는 순간 혐오는 이내 상식의 가면을 쓰고 우리 슬롯의 가장 약한 곳을 향해 칼날을 겨눈다. 덮어두는 순간 비극은 반드시 반복된다. 그러니 이번에는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않게, 역사적 무관용의 본보기로 남겨야 한다. 엄정한 무관용만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이자 방어선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간의 뜨거운 분노를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 참담함을 출발점 삼아 무엇이 폭력인지, 무엇이 교육의 실패인지 끝까지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억을 모욕하는 슬롯에 맞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는 그 기억을 더 또렷하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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