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색- 8화
사랑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당신을 만나고서는 사랑이라는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몰랐다. 사랑이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끌리면 시작이고, 이해가 안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과 끝 사이에서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끝까지 가는 걸 망설이는. 양보는 패배이고 희생은 미련하며 나를 잃어가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동안,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이 좋아질 때, 두려웠다.
또 같은 곳으로 가는 건 아닐까. 이 감정을 그대로 끌고 가다가, 다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앞에서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 좋은데 마냥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었다. 당신을. 그리고 이 감정을. 이 방향을.
그래서 사랑을 공부했다.
먼저 나를 들여다봤다.
오래 들여다봤다. 불편했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많이 접혀 있었다. 감정도, 말도, 욕심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작아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나를 불렀다.
당신이 나를 부르는 방식이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됐다. 그냥 당신이 나를 보는 눈이, 나를 대하는 온도가, 나라는 사람을 어떤 자리에 놓는지가 느껴졌다.
당신의 안목은 높고 신중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본 나는, 퍽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게 아니었다. 거꾸로였다. 이미 귀한 사람이 나를 알아봐 줬다는 것에, 나는 나를 증명받았다.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를 돌보고 싶어졌다.
이토록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었나.
이 사람이 소중해서, 나 스스로를 사랑해 본 적이 있었나.
당신이 사랑한다 하니까, 나는 튼튼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단단해져야겠다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느 시인이 했던 말이 이해됐다.
"모든 빗방울도 두려워했다. 그것에 맞아 죽으면 안 되었기에."
나도 그랬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내가 함부로 닳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당신이 아팠을 때,
당신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나는 교회에 갔다.
신을 찾고 싶지 않았던 세월이 있었다. 신이 있다면 나를 이렇게 두지 않았을 거라고, 오래 조롱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나는 그것을 자존심처럼 품고 살았다.
그런데 당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염치없이 교회당 문 앞에 서 있었다.
구걸했다. 신에게.
다른 말이 없다. 기도라고 부르기엔 너무 일방적이었고, 간청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았다. 그냥 구걸이었다.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있게 해달라고.
혹시 내가 미워서 연락이 없는 거라도 괜찮다고 했다. 당신이 아픈 것보다는 나으니까. 나를 미워해도 좋으니까, 아프지만 말아달라고.
그 말을 신 앞에서 하면서, 나는 내가 낯설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구걸해 본 적도 없었는데, 당신을 위해서는 자존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신을 조롱하던 마음이 간사하게 무너졌다. 무너지는 게 창피하지 않았다.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올 줄 몰랐다.
당신을 만나고서, 나는 내가 몰랐던 나를 자꾸 만난다. 그것이 무섭지 않다는 것도, 당신 덕분에 알았다.
사랑은 공부해야 한다고 누가 그랬는데, 나는 공부 중이다.
나중에 신에게 구걸했던 내가 초라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