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처음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학과를 선택할 때, 나는 슬롯복지사를 꿈꿨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겠느냐며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처음으로 내 직업을 고민하고 선택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맞서서까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 입시 점수에 맞춰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 이후로도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직업을 부모님께 말씀드린 순간 그 직업은 고되다며 거절을 당해보니 분명 내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건데 마음대로 할 순 없는 거구나 일찍 깨달았던듯 싶다. 당시 아버지는 전문직이 아닌 이상 다른 일은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관점이었다. 그런 관념 속에서 자란 나 역시 직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보다 먼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동생은 간호학과에 진학했고, 지금까지도 부모님의 자랑거리다. 반면 나는 졸업을 앞두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첫 회사 지원할 때만 해도 영업이나 기획이라는 직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 다만 뷰티에 관심이 많았기에 화장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뷰티 현장 영업직으로 첫 온라인 게임생활을 시작했다. 직무에 대한 흥미나 적성을 깊이 고민한 선택은 아니었다. 화장품을 좋아하니 나쁘지 않겠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13년의 커리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고 했다. 새로운 회사로 옮길 때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던 마음이 일터에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최근 직업상담사를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흥미와 적성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홀랜드의 직업흥미이론과 스트롱 직업흥미검사를 접했고, 관련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탐구도 함께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흥미와 적성을 모른 채 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미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매장에서 고객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목표를 달성하고, 새로운 매장을 준비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며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나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직무와 환경을 경험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를 얻는지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직무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다음 직업을 고민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이다. 어린 시절 슬롯복지사를 꿈꿨던 마음과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직업상담이라는 분야가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돌고 돌아 다시 사람을 돕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일은 처음부터 마음 한편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할 만큼 알지 못했고, 확신도 부족했을 뿐이다. 일을 찾는 과정에서도 성장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가는 것만큼,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배운다.
처음부터 나를 잘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도착했을까. 그런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이 있었기에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존 경험 굳히기로 나의 커리어를 강화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일을 찾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 성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