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프롤로그

by계발자
일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낸 사례를 말씀해주세요

최근 사례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일터에서 매일 마주하는 일이 어려움이었을 텐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빠르게 답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꺼낸 이야기는 면접때마다 우려먹던 10년 전의 경험이었다.


오프라인 기반 회사에서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준비했던 때였는데 당시의 상황과 어려움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면접관이 궁금해한 것은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었다. 그 위기를 헤쳐 나간 나만의 방식이었다.


당황했던 당시를 돌아보니 내 답변은 1차원적이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고, 임원의 지원을 얻었으며, 여러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야기했다. 틀린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강점이나 특별한 해결 방식은 드러나지 않았다.


새로운 직무로 전환하며 오랜만에 신입 포지션으로 본 화상 면접이었다. 질문에 어울리는 경험을 꺼내긴 했지만, 면접을 마치고 나서야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력서에 기재된 회사 이름과 경력 연차가 나를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놓쳤던 기본 질문이었다. 네 번의 이직을 거치며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수없이 정리했는데도, 매번 우려먹던 이야기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면접 결과보다도 내 삶의 일부분을 나의 관점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삶에 관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경험을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해왔으면서 정작 내 경험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걸까. 면접에 대한 안일한 준비도 한몫했을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라고 나를 홍보하면서도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설명할 준비가 아직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혼 후 충청도로 내려와 새로운 지역에서 나를 소개하고 강점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전에 어떤 회사를 다녔는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는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구체적인 역량까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어떤 회사를 다녔는지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우선 경험이 있으시니 기존에 하셨던 일을 잘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의 가능성에는 긍정적인 신호를 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관계가 발전하진 못했다. 회사의 이름, 경력, 연차를 빌리지 않고도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어떤 역할을 맡았으며,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프로젝트, 의견이 다른 사람과의 협업,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 대부분은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늘 특별하고 대단한 나만의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해결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했다. 임원의 결정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급하게 마무리된 일도 있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 지나칠 수 있는 무수한 경험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 누구와 먼저 소통했는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 어쩌면 나만의 일하는 방식은 거창한 해결바카라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선택들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기를 버텨온 인내, 견디는 힘은 나를 긴 온라인 게임생활에서 지키는 자양분이었다.


그동안 특별한 성과나 눈에 띄는 해결바카라, 기술만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범하게 해냈던 일들은 경험으로 남겨두면서도, 정작 나를 설명하는 재료로는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경력이란 나를 인정하기 위해 꼭 대단한 성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해냈는지 스스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13년의 일 경험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나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을 발견해 보려 한다.


지나간 경험도 다시 보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