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로맨스 표지 진수지 @kalimakeanother
"어... 제, 제가 조금만 더 생각을 좀... 해 봐도 될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연애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결혼에 대해서는 더더욱....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니까....."
변명처럼 들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아직도 '결혼'이란 것은 내게 너무도 먼 일처럼 느껴졌다.
"왜...? 두려워?"
".... 모르겠어요. 그냥 모든 게... 약간 갑작스러워서요."
"맞아. 내가 배려가 부족했지?" 그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묻는다.
"연... 애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요? 제가 연애도 잘 모르니까.... 오빠가 잘 알려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응. 내가 연애도 알려주고... 결혼도.... 알려줄게."
"약혼녀도 있으신데... 괜찮아요?"
"내가 결혼하고 싶은 건 한수아야. 그러니까 약혼녀가 있건 약혼남이 있건 아무 상관없어. 어차피 그런 건 어른들끼리 정하신 거고."
"정말.... 저여도... 괜찮겠어요?"
그는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한 번 내뱉은 후,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한수아."
".... 네?"
"너라도 괜찮은 게 아니야.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정말 너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야."
"아......."
"나중에 정식으로 프러포즈할게. 근데 나 정말.... 네가 아니면 안 되겠어."
"......."
"나한테 사라지지 말라고 했지? 나 이제 못 사라져. 한수아가 없는 세상을 살 수가 없어. 전에는 내가 나름 제대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네가 있다가 사라지니까 아니더라. 내 꼴이 아주 우습더라고."
"... 우습지 않아요."
"아니야. 만약에 형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떨어졌을지도 몰라. 온 세상이 나를 욕하는 것 같고... 정말 죽고 싶었어."
"코치님... 아니, 오빠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래. 나는 한수아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한수아가 안아주면. 나 다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
"......."
"황제훈이랑 강남역 이디야에서 싸웠던 날. 기억해?"
"기억하죠. 그날 저 대신 황제훈이랑 싸우시느라.... 오빠 정체가 들통난 셈이니까."
"그날 한수아가 나한테 전화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내가 황제훈이랑 만나기 전에."
".........."
[저... 좀 도와주세요. 코치님. 수강료 얼마라고 하셨죠? 얼마가 되었든... 제가 만들어 볼 테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이대로는... 너무 답답하고 억울해서 못 살겠어요. 답답하고 불쾌한 순간들이 몇 번이고 있었는데.... 다 이해하고 웃으며 넘겨버렸어요. 근데 그게... 사실 이해한 게 아니고, 웃음이 나왔던 것도 아니에요. 이해하는 척, 괜찮은 척. 연기했어요. 위선자였어요. 저 좀 고쳐주세요. 제 감정이.... 고장 난 거 같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코치님....]
그날 나는 그에게 울며 애원했고, 하소연했었다. 나의 인생을 바꿔달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고 창피한 기억이다.
"그날 한수아가 나한테 전화해서 했던 말들. 나 아직도 기억해."
"그런 건.... 잊어주셔도 괜찮은데."
"아냐.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게 마치....."
"......."
"그게 마치... 내 얘기... 같이 들렸어."
그때, 사무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기다림이 을지로 사무실로 복귀한 것을 눈치채고는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다양한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자들이 '기다림'이라는 특종감을 기다리는 듯했다.
"여기 말고.... 아무도 모를 만한 곳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네...."
".... 괜찮아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각오하고 왔어요."
내 표정을 읽던 기다림은 무언가 결심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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