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이면
길 위에서 지렁이를 흔히 볼 수 있다.
밟히거나 새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가득한 길 위로,
지렁이들은 왜 기어 나오는 걸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 숨어 있다.
1. 숨을 쉬기 위해서 (가장 큰 이유)
지렁이는 사람처럼 폐가 없다.
대신 피부로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피부 호흡'을 한다.
평소에는 흙 틈새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지만,
비가 많이 오면 그 빈 공간이 모두 물로 차버린다.
물속의 산소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대로 땅속에 머무는 것은 곧 질식을 의미한다.
결국 지렁이들은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상으로 대피하는 것이다.
2. 이동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라서
몸이 마르면 죽는 지렁이에게
햇볕이 내리쬐는 건조한 날은 치명적이다.
반면 사방이 촉촉한 비 오는 날은
피부가 마를 걱정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흙 속을 힘들게 파헤치는 것보다 축축한 땅 위를
기어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힘도 덜 든다.
이 기회를 틈타 지렁이들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멀리 이동하거나 짝짓기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힘들고 위험한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걸까?
이유는 같다.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 밖으로 나온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
이 점에서 우리와 지렁이의 삶은 그리 다르지 않다.
새에게 잡혀 먹힐 위험을 알면서도 숨을 쉬기 위해
땅 위로 올라오는 지렁이처럼,
우리도 거친 세상 속으로 매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땅속에 사는 지렁이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한 곳에만 머무른다면 더 넓은 세상을 보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다.
안락한 내 영역에만 안주하는 삶과
세상 밖으로 부딪히는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 하루를 살고 떠나는 하루살이도,
땅속에서 수년을 기다리다 마침내
여름날 밖으로 나와 치열하게 번식하고 떠나는 매미도, 자신의 마지막을 아는 것처럼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는 가끔 곤충을
그저 보잘것없는 작은 생물로 여기지만,
그 작은 생명체들조차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종착지까지 최선을 다해 기어간다.
우리는 종종 주변의 더 좋은 환경,
더 즐겁게 사는 이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정작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는지는
되돌아보지 못한 채 타인의 겉모습만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살이와 매미의 삶을 떠올려본다면,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묵묵히 걸어온 자기 자신을
먼저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때로는 우리에게 혹독한 기다림을 요구한다.
그 기다림 속에는 즐거움도 있지만
슬픔과 외로움, 시련도 공존한다.
우리는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을 이어가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을 알아간다.
세상에 적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삶은 늘 한결같을 수 없기에,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며 하나씩 깨닫고
미래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생존과 성장을 위해 '세상'이라는
밖으로 나아간다.
그 세상은 결코 쉽지 않은 곳이며,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변화하며
풀어가야 할 거대한 숙제와 같다.
그 숙제를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누군가는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
이제 집 안에만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이 넓은 세상에서 나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비 오는 날, 생존을 위해 땅속을 박차고 나오는
지렁이처럼 이제 당신도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야 할 때다.
홀로 거친 파도를 맞서기보다,
함께 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