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인생

계속되는 이야기

by조이


"얘야, 너도 어른이 되면 세상에 화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더라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하는 거야."


아홉 살 아들을 키우며 <아홉 살 인생>을 읽는다. 위기철 작가님은 바카라에서 어느 외국작가의 말을 빌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 만한 나이다'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 문장 자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치게 행복하다고 해서 세상을 못 느낄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인생이라 하는데,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생이 있으니 나름의 세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었다. 인생이란 게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거라면 이해가 되었다. 아홉 살이면, 알 만 한 나이겠구나. 나의 아홉 살에 비해 아이의 아홉 살은 분노와 슬픔이 아주 적고 옅기를 바라지만. 훗날 아이가 본인의 아홉 살을 어떻게 떠올릴지 나는 모를 일이다.


꼭 아홉 살이 아니더라도, 유년 시절에 느꼈던 인생을 어른이 되어서 해석할 때, 누구든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그런 선택을 했던 각자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아홉 살 인생>의 여민이의 시선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더라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것이기에,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미치광이라고 여겼던 골방철학자가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워서 화를 내든, 화를 내서 내가 미워지든, 뭐가 먼저든 내게서 나간 것은 결국 나를 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도 고민을 한다. 글에는 내가 보고 느낀 생각이 가득 담겨 있고, 그것이 결국 나를 설명할 테니. 그러나 그조차도 어느 인생인들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게 인생이라면, 나의 문장으론 차마 그것을 담아낼 수가 없다.


하루에도 수많은 인생을 만나고 있다. 요즘 나의 인생을 한 줄로 말하자면 '인생을 인생 앞에 세우는 인생'이다. 중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지만 뒷자리에서 그들의 평을 종합하고 요약하고 반영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인생을 그들이 보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혹은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을 내가 보기도 한다. 화려한 업적과 원대한 포부를 밝히는 인생의 뒷모습에서 검은 발자국을 본다. 성의 없이 갈겨쓴 서명만큼이나 흐트러진 걸음걸이를 본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 인생 앞에 인생을 세우는 일은 내가 인생 앞에 서는 일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그저 나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원칙대로 확인 절차를 밟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안내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그를 바른걸음과 손길로 제지하면 될 일이다. 인생의 어그러진 부분을 목격한다고 해서 내가 그 인생을 구겨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인생에서 단절은 없어도 분절된 시간들 속에서 내게 주는 교훈이 뭘까 생각해 본다. 여민이의 인생이 아홉 살에서 끝난 게 아니듯 내 인생도 끝나지 않았기에. 어쩌면 인생을 배운다는 건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는 죽는 순간까지 단절이 없다. 그냥 쭈욱 진행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기쁨도 있고, 좌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과장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리라 착각할 필요는 없다. 기쁨 때문에, 슬픔 때문에, 낭만 때문에, 고통 때문에, 욕망 때문에, 좌절 때문에, 사랑 때문에, 증오 때문에....., 또는 과거 때문에, 현재 때문에, 미래 때문에......


아홉 살 아들에게 <아홉 살 인생> 바카라을 권했다. 네가 아홉 살이니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재미있는 바카라이라고 했더니 똥 얘기가 나오는지 묻는다. 그래... 아직도 똥, 방귀 얘기가 재미있을 나이에 <아홉 살 인생>은 아직 무리인가 싶다. 그래도 아홉 살 인생을 살아가는 아들도 나름 제 인생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저 응원할 수밖에. 아들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 출처: 위기철, <아홉 살 인생>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세월이 우리 편에 서서 고맙게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