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와 우리의 차이
미뤄둔 숙제를 하듯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했다. 참혹한 고문 장면도, 살아남은 독립운동가의 생생한 증언도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시청했다. 내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일이 죄가 되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사는 동안 유관순 열사의 고백처럼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서 괴로워'했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떠올렸다.
사형장과 시구문을 지나고 고문 도구들까지 목격한 딸이 내게 물었다.
"왜 그냥 죽이지 않고 고문을 한 거야?"
화면 너머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증언하신 이병희 독립운동가의 말씀처럼, 고문의 고통이 아이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최소한의 고통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나의 소망마저도 사치였음을 그곳에서 깨달았다. 손톱이 다 뽑히고, 코와 귀가 잘리는 고통보다도 '나라를 잃은 고통이 더 크다'라고 말한 열일곱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마주하며.
"응징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잡아들인 사람에게서 정보를 빼내려고 했을 거야.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같이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고 했겠지.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자신들 말에 복종하게 하려고.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지금의 건물을 만들었대. 이것도 광복 이후에 거의 부수고 3분의 1 정도만 남긴 거래."
독립운동가들의 굳은 결의가 전해진 것인지, 협박해도 자신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는 열 살 배기 딸의 각오 앞에서 나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엄마는 자신이 없어. 말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고통 앞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내 가족까지도 죽이겠다 협박한다면... 너무나 사랑하는 너희를 생각하면 엄마는 말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
그만큼 이들의 희생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상기하며 우리는 그곳을 떠나왔다.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인해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사이에도 우산을 접었다 펼쳤다 했지만, 보슬비에도 버리지 못하는 우산이 성가시게 느껴졌다. 이 정도 비는 맞아도 괜찮을 텐데. 건물 뒤편, 천장이 뚫린 정자에 앉아 쉬며 옥사에 난 작은 창들을 바라보았다.
'세월이 우리 편에 서서 고맙게 흘렀기 때문...'
최근 논란이 된 친일파 가문 연예인의 아버지가 과거에 기고했다는 문장을 곱씹어보았다. 장애인에 대한 슬롯적 인식이 변화되고 있음에 감사함을 표현한 문장이라지만 다른 의미에서 영 불편했던 문장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는 시간마저도 그렇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이건 철저하게 시간의 입장이 아닌, 어느 편에 선 무리의 입장에서 지어낸 문장에 불과하다. 대한독립의 염원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옥살이를 하던 시대부터 일제의 편에 서서, 튼튼하게 부지해 온 '4대째 의사 집안'에서 나온 문장이라서 불편했던 걸까.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세월만 놓고 보면 그들의 입장에서 고맙게 흘러온 게 맞는 것도 같다. 그렇다 해도, 그러하여도... 분절된 시간만으로는 결론짓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살아서 광복을 맞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는 후일에 마침내 찾아온 광복이 그러한 것처럼.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뿌려진 그 피가 헛되지 않도록 거두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피로 쓰인 역사를 지우지 않는 일이.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순교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와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가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고통받은 시기와 맞닿아 있으며,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에 해당되는 16인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 비율이 전체 국민의 1%에 불과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가슴이 뛰는 역사다.
숭고한 희생으로 쓰인 광복의 역사, 복음의 역사적 수혜를 입은 사람은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할까.
공평하게 흘러갈 뿐인 세월을 나의 편에서 해석하기보다도, 하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거스르지 않는 편에 서있기로 한다. 그것이 '광복이 될 줄 모르고' 친일을 택했던 그 시절의 '무리'와는 달리 때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아 보여도, 끝내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이 될 줄 믿는다.
때로는 큰 뜻을 품고, 때로는 그 뜻을 잊더라도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는 것. 감히 포기와 희생을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풍요와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이 시대에서, 내가 지켜내야 하는 최소한의 태도이다. 결국 '우리'의 범위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월이 정말 우리의 편에 서서 고맙게 흘러갈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그렇지 않대도, 흐르고 흐르다 모두 흘러가버린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끝내 웃게 될 것이다. 나는 그 편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