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내게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매력이나 장점을 먼저 발견하는 편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감사의 능력이 탁월하다. 나는 기도할 때 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한참 힘들 때는 감사할 게 뭐가 있냐는 내면의 외침에도 거의 정신승리에 가까울 정도로 감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환경에서 자란 덕분이겠고 나의 볼품없는 모습을 맞닥뜨리며 바닥을 기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무엇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나도 지나친 자바카라보다는 적당히 남 탓도 하고 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마음이라던지 애통하는 심령 같은 게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경험이 늘고, 인정을 받고, 능력치가 높아져도 언제든지 심령이 가난해질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열심히 해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원망은 심장으로 통하는 핏줄마저 꼬이고 꼬이게 만들었다. 옆에서 보면 정말 너무하다 싶을 만큼 온라인 게임이 치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내 남편의 치명적인 장점만큼이나 치명적인 단점을 어찌할 수 없는 회사가 이해도 되어 안타깝기도 하다. 나야 장점을 먼저 보는 사람이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까. 단점을 약점 삼는 세상에게 잡아 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말은,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이곳이나 도망쳐서 간 그곳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다. 결국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달란트를 묻어두는 악한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열심히 산 대가로 무언가를 얻길 당연하게 기대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원망하는 삶은 애달프기만 하다.
나 또한 같은 회사원으로서 온라인 게임상사의 무바카라임한 행태라던지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사태에 분개하기도 하지만, 남편의 뿌리 깊은 분노와 적개심, 사람과 세상을 향한 원망을 보면서, 그 근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서 내가 이것을 심으면 저것을 얻겠지라는 마음은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 세상은 불공평과 모순이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러한 일들이, 이러한 일들에서 겪게 되는 실망과 좌절이 종국엔 다시 천국을 꿈꾸고 하늘소망을 품게 되는 이유가 된다. 내가 이것에 무엇을 바라고 기대했는지 되돌아보며, 그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결국 나의 바벨탑을 쌓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무너진 게 오히려 감사할 일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경우 높아진 마음이 무너질 때 다시 살아났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경에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외쳤던 말이다. 당시 소경이 많았던 지역에서, 앞을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통된 소원이었을지 예수님은 모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를 고쳐주시기 전에 앞서 예수님은 그를 불러 물으신 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눈만 뜨게 된다면, 이것만 해결된다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마치 인생이 달라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관점에선 이 세상은 잠깐이며 소경이나 눈뜬 자나, 부자나 거지나, 꿈을 이룬 자나 이루지 못한 자나 일반일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믿음이 과연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더라도, 천재지변 앞에선 아무것도 거둘 수 없다.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우주의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저 하루하루 천국 소망을 가지고 주신 인생을 사는 것. 큰 한방이 없이도 자족하며 사는 것. 이 세상에서 썩어질 씨가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었던 인생을 최선으로 인도해 주신 손길에 감사하는 것. 받은 복을 세어보는 것. 나를 지으신 분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며 내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거라는, 그 사실을 믿는 것.
견딜 수 없는 더위가 기승이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며칠을 고생했다. 산지 몇 년도 안 되었지만 그동안 전기세 아낀다고 마음껏 써본 적도 없어서 서비스센터에 연락했는데 대기가 밀려있다. 수리비용도 상당하대서 어쩔 수 없이 새 모델을 알아봤다. 두 달 전 인테리어 때문에 이렇게 고장 날 에어컨의 설치비용을 다시 지불한 것도, 예기치 못한 구매로 큰돈 나가는 것도 아까웠지만 할부보단 구독이라는 개념으로 좋은 조건에 이용하게 되었다. 배송과 설치도 하루 만에 빠르게 진행되어서 역시 엘지, 역시 대한민국이구나 싶었다. 뽀송한 침대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지금이야말로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