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뭐든지 보편의 모습은 있기 마련이고, 내가 추구하는 사랑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내게 요구했던 사랑의 모습이었다.
각박한 세상에서 다정함은 유행이 되었다. 내게 왔다가 떠나갔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그들이 내게 기대했던 건 아마 그런 종류의 사랑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다정했던 그들의 앞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들 앞에서 꺼내 보일 다정함이 없어 허둥대던 나의 모습도.
같은 극을 마주 보게 했을 때 밀어내는 자석의 힘처럼, 나는 사람들과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 이상으로 가까워져 봐야 좋을 게 없다는 학습의 결과이기도 했고, 타고 난 성향이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탓에 흔히 말하는 애정 결핍이라던지 친구관계의 어려움을 덜 겪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 어려움은 반대로 생겨났다. 앞서 나를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그들의 그림자라도 밟아보겠다고 애쓰는 동안 내 마음엔 결핍이 차올랐다. 세심함과 친밀함, 다정함 같은 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한번 만나는 사람에겐 반짝 노력해 볼 수 있어도,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는 금방 밑천이 드러났다. 가식적인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이 원하는 모양의 사랑이 내게 없음을.
멀리서 보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여기저기서 다가온 사람들도, 나를 거들떠보고선 떠나갔다. 내가 적당하다고 여기는 그 거리가 속삭이는 상대의 마음을 듣기엔 너무도 먼 거리였나 보다. 그러나 그 거리를 좁히는 건 내게 고통이었다. 그건 나를 지키는 수단이자 나의 생존전략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내게 상처받고 떠난 존재들을 생각할 때마다 괴로웠다. 상처를 준 적 없다고 주장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내게서 어떤 기대를 거둔 그들의 태도가 냉담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결이 맞지 않아 나를 그냥 지나쳤을 뿐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은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열등감이었다. 그들에게 있는 사랑이 내겐 없다는, 그들이 원하는 걸 내가 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열등감. 나와는 달리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잘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결국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내게 상처받고 떠난 이들에 대한 미안함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처받은 이유는 외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친밀함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어떤 이로 인하여 나의 착각이 깨졌다. 그동안 나를 어마어마하게 괴롭혔던 어마어마한 착각이. 그가 생각하는 사랑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내게 보였던 다정함도 사랑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이 내보였던 만큼 내게 무엇을 돌려받길 기대했던 거라고.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을 바라지 않고 내어주는 거라고 했다. 그게 시간이든 물질이든, 크든 작든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않고, 그것을 알아주는 마음조차 바라지 않는 것. 그럼에도 내어줄 수 있는 것.
눈물이 핑 돌았다. 안심의 눈물이었다. 그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사랑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사랑의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해 본 사랑이었다. 내가 받았을 때 가장 편안했던 사랑,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사랑이었다.
어느새 사랑은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흔들었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뿐 결국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도 친절도 다정도 열등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저 나를 좋은 사람처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장신구이자 유행하는 아이템에 불과할 것이다.
사랑은 건다고 해서 걸리지 않고, 입는다고 해서 붙어있지 않다. 사랑은 밖으로 심고 안으로 새기는 것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게 다른 사람이든 나 자신이든. 내게 있는 걸 내어주고 없음을 탓하지 않는 것, 그조차도 끌어안는 게 사랑일 것이다.
나의 어마어마한 착각을 깨준 선배는 오늘 내게 밥을 사주었다. 감사하다고, 다음엔 제가 사겠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한 번 얻어먹으면 한 번 사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내게 다음엔 더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게 사랑이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