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피터팬

by조이


꼭두님, 안녕하세요. 꼭두님의 피터팬을 보며 제가 만난 피터팬이 떠올랐습니다. 주일학교 고등부 시절, 저보다 한 살 많은 오빠였지요.

사실 몇 년 전까지도 피터팬 오빠는 드문드문 제게 새해 인사를 건네왔어요. 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혼자 묻고 대답하는, 피터팬 오빠의 말풍선만으로 가득한 채팅방에서 저는 몇 번 뒤늦은 답장을 하다가 최근 몇 년 전엔 그마저도 하지 않았어요.

이 글을 쓰면서 조용히 피터팬 오빠의 카톡 프로필을 열어봅니다. 피터팬 오빠는 정말 피터팬일까요. 그때와 똑같은 표정 때문인지 늙었다고 느껴지지가 않아요. 열아홉 그 모습에서 서른아홉, 거의 마흔이 된 아저씨인데도.

오랜만에 안부를 전할까 하다가 결국 그만두었습니다. 피터팬 오빠와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은 없지만 꼭두님 덕분에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어요. 네버랜드를 꿈꾸며.






피터팬 오빠는 꼭두님의 피터팬처럼 눈썹이 진하고 잘 생긴 외모에 체격도 좋았어요. 인지능력이 좋은 편에 속해서 장애우 예배가 아닌 고등부 예배에 참석할 정도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눈동자의 움직임과 팝콘처럼 튀던 언어, 과한 제스처들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만날 때마다 환대하며 짧은 대화라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돌아온 탕자 같은 저를 맞이해 주었던 것처럼 교회 안에는 포용적인 분위기가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고등부 역사상 처음으로 비전트립이 생겼습니다. 저와 피터팬 오빠도 비전트립을 함께 가게 되었어요. 저는 당시 고등부를 대표하는 회장직을 맡고 있었고 누구보다 피터팬 오빠를 잘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죠. 그러나 입국을 앞둔 마지막 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였던 부담감에 그만 피터팬 오빠를 외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피터팬 오빠는 함께 하길 원했으나 규칙을 자꾸만 어기게 되어 흐름이 끊겼습니다. 그동안 비전트립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나름 긴장했던 마음이 마지막 날 관광 위주의 시간을 보내던 중 느슨해졌었나 봅니다. 저는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고 오로지 그것만이 저의 바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제껏 많이 챙겨줬잖아. 이젠 나도 마음껏 놀고 싶단 말이야.'

나를 바라보는 피터팬 오빠를 외면하길 여러 차례, 피터팬 오빠는 감정이 격해지며 짐승처럼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자신이 소외받는다고 느낀다면 마음이 무너질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숨길 뿐이겠지요. 피터팬 오빠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어린아이처럼 그런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게 당연했을 텐데도, 저보다 나이가 많은 피터팬 오빠의 울부짖음은 제게 놀람을 넘어선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은 그 원인이 제게 있었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부장 선생님의 차분한 응대로 피터팬 오빠는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피터팬 오빠의 모습에 놀랐지만 차마 미안하다거나 괜찮냐는 말조차 건넬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마지막 모임에서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그 눈물은 피터팬오빠에게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내가 그를 품을 그릇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속상함,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죄바카라감이 뒤섞인 후회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수습하느라 허둥댈 때, 피터팬 오빠가 투박하게 휴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마치 제게 괜찮다고, 네 마음 안다고 말하는 것 같았죠. 제 울음은 그 순간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위로가 저를 울게 했어요. 미안하다는 저의 고백을 받기도 전에 그는 제 눈물을 먼저 받아주었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쓰다 보니, 이 글에서마저 '우리'와 '피터팬' 오빠를 구분 지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성숙한 제가 일찍이 나누어버린 그 세상에서는 그랬거든요. 그러나 다시 쓰는 이야기 속에서는 우리의 범위가 더 넓어지길 바랍니다. 수많은 피터팬들과 함께 말이에요. 부디 꼭두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네버랜드를 꿈꾸며.






오늘, 꼭두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두 달 전 꼭두님께 보냈던 메일을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확인한 수신 기록이 먹먹합니다. 미숙했던 저의 태도를 반성하는 고백처럼 써 내려간 글이 꼭두님께는 어떻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꼭두님 덕분에 제 삶에서 만난, 앞으로 만날 피터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 졌다는 것이었는데...


못다 쓴 편지처럼 이곳 저의 공간에 옮겨 써 봅니다. 그리고 꼭두님이 쥐어준 펜으로 계속해서 쓰일 꼭두님의 꿈을 지켜보고 동참하겠습니다.


꼭두, 전경철 아버님의 절절했던 생을 기리며, 네버랜드를 꿈꾸며. 온라인카지노에서 조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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