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했던 직원이 퇴사했다. 부서가 달라졌어도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눈물을 보게 되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 먹자는 핑계를 대며 그녀를 나만의 아지트로 이끌었다.
"여기는 우리 직원들이 거의 안 오는 가게예요."
바카라 한 권 들고 점심시간마다 내가 피신하던 카페였다. 그녀 앞에 내민 건 베이글과 커피뿐이었지만 마음의 양식이 동나버린 상황에서는 음식을 밀어 넣기보단 무언가를 끌어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목이 메고 가슴이 막힐 정도로, 눈물을 더 이상 삼키지 못하고 터뜨리게 하는 그 무엇을.
그렇게 나는 그날 하루 그녀의 대나무숲이 되었고, 이후 그녀는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나는 공감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같은 온라인 게임인으로서 울분을 토했을 뿐이다. 또한 인간적으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를 애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늘 웃고만 다니던 그녀의 우는 얼굴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렇게 한층 성장한 그녀가 한참이 지나 퇴사 소식을 내게 알렸을 때, 놀라고 서운했으나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그녀를 둘러싼 상황을 듣고 보니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밝은 얼굴을 보며 이제 정말 자기 자리를 찾아가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막연해도 창창한 그녀의 미래를 전심으로 응원했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있는 나도 혼자만 몰래 품고 있는 소중한 장면들을 그녀와 나누었다. 그녀도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간 자기 자신을 지켜내느라 애썼던 일들에 대해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 그들을 미워하느라 괴로워했던 과거의 시간을 반추하며 이제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러나 햇살같이 밝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의 진심 어린 말들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했다.
"에이, 저는 쓰레기예요."
바닥을 치다가 심연을 들여다본 사람 특유의 해탈한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 쓰레기예요. 모두 냄새나는 구석이 있다니까."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과거의 내게도, 현재의 내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물건 하나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녹이 슬고 해지는 법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마음은 쓰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건데.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는 멀쩡한 물건도 예쁘기만 한 쓰레기가 될 수 있다. 잘 차려 놓은 음식도 상대방이 먹지 않고 내팽개친다면 음식물쓰레기가 되는 것처럼, 마음은 버려지기도 한다. 쓰레기가 아닌 것도 쓰레기 취급을 받아서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쓰레기여도 사람들에게 냄새만 안 풍기면 되지. 자정능력을 갖춘 사람이 어디 흔한 줄 알아요?"
냄새를 풍기지만 않으면 된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말이지 악취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밀봉을 해두어도 새어나가기 마련인데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슬롯에는 분명 있다. 그들도 어딘가에서 쓰레기 취급을 당하며 버려졌던 마음이 있겠지만, 그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조차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자기 객관화 능력에 더해 자체 정화능력이란 분명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백퍼센트로 정화시킬 순 없어도 악취가 나지 않을 정도로 관리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이 필요한가. 가장 가까이에 있어 먼저 자각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냄새가 자기 성찰과 반성, 회개로 뻗어나가지 못한 채 다만 자바카라과 자학, 자기혐오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미워하되 똑같이 더럽거나 혹은 치사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은 것, 그것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해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미워했던, 우리가 속으로 미워하기도 했던 그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를 환대할 수 있게 된 건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는 증거였다. 그들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바카라하는 그녀에게 나는 자축을 권했다.
다음 날 자리에는 버터쿠키와 메시지 카드가 놓여있었다. 오밀조밀한 글자 속에서 그녀의 진심이 보였다. 집에 가는 길 화단 앞에서 그 마음을 기념했다. 이렇게 예쁜 꽃도 누군가는 예쁜 쓰레기라고 칭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언젠가 쓰임을 다한다면 사라지고 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쓰레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쓰레기가 아닌 것이 있을까. 다만 꽃다발이 그 쓰임을 다하더라도, 당장 내게 필요치 않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영원하지 않을 관계, 영원하지 않을 마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