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를 한다고 너무 들떠 있었나 보다. 들뜬 마음이 가라앉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시 들렀던 타인의 집에서, 나는 내 범위를 넘어선 선택의 결과물을 보았다.
가령 장판이 아닌 마룻바닥이라던지, 티브이가 설치된 아트월의 인테리어라던지, 벽면의 수납공간이나 베란다 공간의 활용도라던지... 찢기고 낙서된 벽지와 찍히고 들린 장판을 갈고자 했던 소박한 마음이 디테일한 결과의 차이 앞에서 왠지 부끄러워졌다.
하는 김에 이것저것 추가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용 예산의 범위 내에서 고민했다. 그마저도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내 선택과 다른 결과물을 보는 순간 그냥 그 집에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들. 인테리어를 한답시고 이주 가까이 집을 비우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어낸 결과가 겨우 이것일까 하는 허탈함이 몰려왔다. 예산을 좀 더 모았다가 하든지 아님 빚을 져서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았을까...
평수의 한계가 구조의 한계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도 절감했다. 하나뿐인 작고 소중한 화장실에 나의 로망인 조적 파티션을 설치했다. 타일 덧방으로 시공한 데다 파티션 두께가 생각보다 상당하여 막상 들어서니 답답했다. 욕심이었음을 깨닫고 난 뒤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너비였어도 욕조 위에 있었을 땐 몰랐는데 벽을 세우니 좁게 느껴졌다. 욕심에 갇혀서 살게 될까.
애초에 인테리어를 추진했던 마음을 떠올려본다. 추천받은 바카라을 읽으며 의식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익숙한 업무를 하며 되풀이되던 일상 속에서 바카라을 읽으며 사색할 여유도 있었지만 생활적 측면은 관성과 타성에 젖어 있었다.
과연 견적을 받아보는 것부터 수없는 판단과 선택, 소통이 오갔다. 그사이 만들어진 비교 견적 어플을 톡톡이 활용했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지 않고 각각의 시공 전문가와 직접 컨택한 건 당연히 예산을 절감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업계라도 부르는 가격이 다른 만큼이나 사람의 성향도 다양함을 알게 되었다.
고객의 세부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견적을 산출하고 안내하는 일, 현장직의 기술과 대응력, 육체적 수고로움에 대해 그만한 가치가 있음도 생각해 보았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란 어렵다는 것도.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입성할까. 집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나의 선택과 취향으로 채워진 것 같아도, 사실은 내가 가진 예산을 포함해 나라는 경험치를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인 것 같다. 아파트 구조에 무난한 취향이라도 그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디테일의 범위와 결과는 달랐다. 나중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취향이 깃든 곳에 들어가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경험해 보고 확장해 가는 거겠지 싶고. 잘 지어진 전셋집도 비용은 그에 상응할 테지만.
이런 모든 고민들이 돈이면 다 해결되겠지 싶다가도, 당연한 세상사 이치라고 생각하니 냉소마저 날숨으로 빠져나간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타인의 집을 넘봤던 게 바로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하고.
내가 선택한 것, 이보다 좋은 것들을 보며 낙심하는 비교 대신 꿈꾸는 계기로 삼는다면 어떨까. 모든 게 별천지겠지. 반짝이는 눈으로 본다면 내 눈에도 별이 가득하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