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윤채

2020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 생활글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이 비상인 요즘,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 한통.


“형준아, 잘 지냈어? 안부 차 연락했다”


약간 늘어지면서 차분한 목소리. 그렇다. 내 친구 윤채다. 이 친구가 사는 곳은 대구, 난 서울. 거리상으로 꽤 멀지만 마음은 한 동네에 같이 산 듯 가까워진지 오래다.


처음 이 친구를 알게 된 건 온라인 상에서였다. 5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페이스북 상에서 우연히 내가 올린 글을 보게 되면서 의견을 주고받던 게 실제 만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동갑내기라 그런지 서로 고민도, 관심사도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객관적인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나는 비장애인, 이 친구는 자폐성 장애인. 그런 이분법적 시선에서 우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으나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서로 장난도 치며 어려움도 나누는 등 그렇게 관계를 맺어왔었다. 근래 들어 터진 코로나19는 이 친구의 삶을 급작스럽게 바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지난 2월, 대구지역의 코로나가 극심하던 때, 이 친구도 예외는 아니었었다.

우선
‘온라인 게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평소처럼 일하는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로시간이 시시때때로 변하여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힘들어하는 이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순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진심어린 격려와 지지뿐. 직접 찾아가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못한다는 현실에 슬픔 아닌 슬픔을 느꼈다. 더욱이 나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좋아하는 이 친구의 특성상 정신적으로 우울함과 무기력함을 느끼었다고.


다른 하나는 ‘취미생활’이었다.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이 친구의 성향상 무기한 연기되거나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경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으리라.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야구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었는데 지금은 언제 다시 경기가 재개되나,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나 잠실야구장 등 다시 가볼 수는 있을까 걱정 아닌 걱정으로 통화를 끝맺음 할 때가 잦다.


마지막으로 ‘목표의식’이다. 평소 슬롯이슈나 문제에 관심이 있어 슬롯복지사인 내게 종종 토론주제를 던지던 이 친구. 특히 ‘장애인 복지’ 현장 소식을 주변에도 공유하며 이웃들의 아픔과 설움에 공감하던 그 모습을 글을 쓰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올해 장애인식개선강사로 도전하고자 준비하던 차 코로나19로 내년으로 미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같이 아쉬워했다. 비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 또한 꿈을 꿀 수 있다며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루겠지, 아니 곧 이룰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크고 작은 변화를 나와 나누며 매일을 통화한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정도? ‘남자 둘이 무슨 말을 많이 나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나눌 이야기가 많다. 아니, 목소리만 들어도 안심이 되고 좋다. 그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은 채 건강하게, 흔들리지 않게 기준 잡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고로 대구에는 이 친구만 있지 않다. 지체장애인으로 전동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지인이 있다. 둘 다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나’를 매개체로 인근에 살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분명 만남이 성사되어 인증사진 나에게 보냈겠지. 그 정도로 대구는, 그 곳의 사람들은 나와 깊은 관계로 점쳐져있다.


통화를 종종하다보면 도리어 이 친구는 자신보다 나의 안위와 서울의 장애인복지 현장 걱정을 많이 한다. 철저히 안전수칙 지키며 예방에 신경 쓰고 있다 안심시키지만 대답하는 그 친구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뚝뚝 묻어나온다. 사실 지역이 무슨 상관이랴. 언제 어디서든 우린 연결되어 있는데,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심적 거리는 너와 나는 하나인데 말이다.


주변인들이 내게 종종 말한다. 매일 같이 전화 오면 부담되지 않냐면서 가끔은 받지 말라고 말이다.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전화’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자기를 표현하고 고립되지 않기 위해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그 친구의 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주말에 전화를 했길래 시간구애 받지 않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시시콜콜한 일상 속 에피소드들을 공유하면서 웃기도, 짜증내기도, 충고하기도 하는 등 편하게 대화했다. 통화 말미에 이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닌가.


“형준아, 너랑 대화하니까 참 좋다. 많이 보고 싶고 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울컥한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 못한 말, 나는 그냥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대화 나눈 것 뿐 인데 이 친구에게는 대화 이상으로 나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타인의 행복과 성공을 빌면서까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친구에게 저런 진심어린 표현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고객들을 대면하는 서비스를 맡은 그 친구의 업무가 코로나19로 인하여 활동영역이 좁아져 힘들다는 소식을 왜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통화를 마치고나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났다.


작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어울림. 그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19 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왜 이 친구의 관심과 사랑, 어울림을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됨은 물론이다.


나는 장애인복지 현장의 슬롯복지사다. 햇수로는 4년차, 윤채와 같은 발달장애인 대상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떠올려봤다. 평소의 ‘나’는 현장에서 어떻게 당사자들을 대하고 있는지를. 코로나19 전과 후를 비교하면서 말이다.


아니, 코로나19 전과 후를 떠나 윤채를 대하는 것과 다른 당사자들을 대하는 것과 비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랬더니 확연히 차이나는 한 가지. 그건 당사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마음가짐)’이었다.



현장에서 나는 매일 참여자들을 직접 만나며 열정으로 다하였다. 사람중심에 입각하여 그들의 욕구와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하려 애썼다. 내가 먼저 관심을 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여 프로그램에 잘 적응하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었다.


반면 이 친구를 대할 땐 어떠했는가.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비교대상에 맞진 않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아래 놓고 보자면 과연 그를 존중과 배려로 대했는지 아님 그러는 척을 했는지 스스로 고민이 들었다. 즉 ‘차이’와 ‘차별’의 기준과 스스로의 문답을 코로나19가 제공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윤채만이 아니었다. 나와 연락을 종종 주고받는 다른 장애인들과의 관계와 소통은 어떠했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확장되자 한 가지 결심으로 이어졌다. ‘더 자주 표현하자’로. 슬롯복지사 조형준이 아닌 인간 조형준으로서 지금처럼 모든 이들을 대하자고 말이다.



이런 나의 결심과 변화의 의지를 윤채도 느꼈을까? 며칠 전 통화하면서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특유의 리액션이라 생각하기에는 기분 좋은 하이톤, 연신 “고마워”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괜히 나도 미소 짓는다. 혼자가 아닌 같이 발맞추어 노력해나가는 거니까.


2020년 8월 21일 오후 9시 51분. 이 글을 쓰기 하루 전에도 이 친구와 전화를 했었다. 2~3분 남짓한 짧은 대화, 그러나 긴 말하지 않아도 우린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목표와 꿈을 위해 어떻게든 이겨내고 있다고, 이뤄나가고 있는 중임을 확인하면서.

“그래 형준아, 주말 잘 보내고 또 연락할게. 잘 자”


우리가 흔히 하는 형식적인 말들. 그러나 윤채가하면 무언가 다르게 느껴진다. 나도 화답한다.


“응 윤채야. 조심히 잘 들어가고 또 연락해. 푹 셔!”


분명 이 친구는 내가 한 말을 계속 상기하며 집에 잘 들어가겠지? 푹 쉬겠지? 내일이나 모레 다시 연락하겠지? 코로나19가 내 친구 윤채에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욱 표현하게 되었듯 나 또한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그럴 것이다.


KakaoTalk_20190421_141816492.jpg


작가의 이전글2021 한경 신춘문예에 도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