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는거지!
제목이 자극적이라면 맞다. 나도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쓸 줄 몰랐는데 마지막 공모전 주제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와 느낌을 그대로 끄적여 본다.
소개를 먼저하자면 나는 슬롯복지사다. 실천현장에서 지역주민들과, 이용자 및 보호자들과 매일을 부대끼며 함께하지. 어디보자..2015년 졸업 후 지금까지, 중간에 퇴사한번 했지만 거진 4년차가 되어가는 중고신인이네.
왜 스스로 '병신'임을 자처했는지 지금부터 한 청년 슬롯복지사의 자화상을 그려볼까 한다.
2018년 10월, 내게는 하나의 분기점이 된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바로 ‘퇴사’였다. 조직에서 나는 그렇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실수도 잦았고 열정은 가득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이용자와 보호자들 생각하며 어떻게든 버텨왔는데 결국 스스로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을 실행하고야 만다.
비참했었다. 나름 큰 뜻을 품고 드디어 내가 생각해온 복지를 펼쳐 보일 수 있겠다 기대했건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업무야 하다보면 조금씩 는다지만 관계적인 면에 있어서는 완전 젬병이었음을 확연히 느꼈지. 이직도, 어떠한 도전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쉬고파 내린 급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근데 재밌는 건, 조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보니 진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거다. 분명 조직에 있었을 때도 현재의 내 상황과 역량을 점검하고 판단함에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자부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었음을 나와 보니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깨달음? 내가 병신인데 병신이 아닌 척 굴었다는 것이다.
살면서 사람이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는 것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아무리 뜯어 고치고 투자를 해도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20대 중후반이었던 난 그 편견을 어떻게든 깨고 싶었는가 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든 수행해내면서 오기로, 또 악기로 버텨왔었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고 안쓰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슬롯생활이 처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원래 성향 자체가 바카라임감과 사명이 조금 강한편이긴 하지만. 그것 외에도 ‘잘해야 한다’, ‘인정 받아야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날 사로잡고 있었음을 퇴사하니까 알겠더라고.
선임들이 또는 여러 팀장님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공통적으로 ‘그 연차 때에는 실수할 수 있다’, ‘그 정도만 해도 잘 한거야’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믿질 않았다.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성과나 나만의 색채는 뚜렷이 나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또 계획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더 미치겠는 상황, 밤을 새면서까지 내 몸과 마음을 망치며 3년 넘게 달려왔었다.
퇴사하면서도 이러한 나의 궁금증과 강박으로 변한 압박감은 해갈되지 않았다. 두려웠었다. 혹 새롭게 온라인 게임을 구했을 때도 브레이크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 못하는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해내보이겠다며 무작정 달려들까봐 말이다.
그러던 차 우연히 한 재단에서 슬롯복지사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공고를 봤다. 딱 하나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수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신청하였고 운 좋게도 선정되어 정기 상담을 받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단계인 6주간의 전문 상담사와의 만남이었다. 집근처 상담소로 배정되어 가던 첫 날.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상담사님께 인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인자한 미소로 따뜻한 차 한 잔 하라며 그렇게 만남은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나의 그간 살아온 삶과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구구절절 상담사와 공유하였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곤 별 다른 조언이나 충고 없이 하나의 과업만을 준채 돌려 보내 는게 아닌가. 그 과업도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한 주 잘 보내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런 거다.
6회기 중 절반이 지나간 시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담사에게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공유했다. 그리고 나의 슬롯생활, 즉, 온라인 게임에서의 삶은 어땠는지도 이어서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오늘 만남은 조금 특별하게 상담사 본인의 이야기도 함께 꺼냈다.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적어보면 대략 이렇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중, 당시 자신감에 가득 찼던 상담사는 자신의 논문을 들고 지도교수님을 찾아갔었다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지도교수에게 어땠는지 평을 묻자 이렇게 말하였다고.
“병신인데 병신이 아닌 척을 왜 하는 거야?”
순간 당황한 상담사는 지도교수에게 왜 자신이 병신인지 바로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답을 하지 않으셨다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스로 ‘~아닌 척’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본인은 여전히 배워야할 게 많은 학생인데 이미 박사과정을 다 밟은 것처럼 교만해지지 말라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정진하라는 교수님의 무언의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상담사의 고백에 나 자신도 곰곰이 돌아봤다. ‘잘하는 척’, ‘괜찮은 척’하며 스스로 소진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던 것을 마찬가지로 깨달으면서 말이다. 잘하지 못함을,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는 삶이 더 윤택하고 행복함을 상담사는 나에게 힘주어 말하였다.
그래서 흰 백지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무수히 적어보면서.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지면서 편해 지는 게 아닌가.
‘그래, 나도 못하는 게 있는데 애써 잘 할려고 노력할 필요 없잖아?’
다시 복지현장으로 복귀한 지금도 그 마음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누가 물어보면 인정한다.
‘지금 다른 일 때문에 제가 하기 좀 어려운데요?’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근데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거는 잘 모르겠어요. 찾아볼까요?’
전 온라인 게임에서는 해보지도 못한 말을 지금 새로운 곳에서는 조금씩 표현하고 있다. ‘날 싸가지 없게 생각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싫어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상대방은 신경도 안쓰는 듯, 알겠다며 넘어가는게 아닌가. 나도 주어진 업무나 일에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결 마음이 풀려짐을 느꼈다.
무조건 잘하려고하는 욕심을 버리고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나 답게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확신한다. 혹여나 어디에서 나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며 후회하거나 좌절감에 빠진 이름모를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