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열등감을 원동력으로 삼았던 한 청년의 극복수기
#1. 외갓집에서 그녀와의 잊을 수 없는 생애 첫 영단어 대결!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만 되면 외갓집이 있는 경북 예천으로 놀러갔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일때문에 못 가셨고 어머니와 형 그리고 막내인 저까지 세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듯 매번 갔었죠.
가끔 저희 가족 외 친척들도 놀러와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외숙모나 이모네 가족 등요. 3학년인가 4학년때로 기억하는데요. 제게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심어준 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한가로운 어느 여름 오후였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이모, 외할아버지는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있었고요.
저와 사촌, 그리고 형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당시 "음메~"하고 우는 소하며 리어카, 각종 농기구 등.
어린 제 마음을 흔들어놓은 신기한 것들이 눈에 많이 보였었죠.
특히 리어카는 꼭 한번 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할 정도로 이유모를 매력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사촌과의 영단어 대결은 "리어카"로부터 시작되었고요.
저나 사촌이나 당시 영어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고 특히 사촌은 공부를 잘했었습니다. 항상 저랑 비교대상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엄마 그리고 외할아버지앞에서 뽐내고싶은 마음에
"외할아버지, 사촌이랑 영어단어 맞추기해서 이기면 리어카 태워주세요" 라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치더라고요. 외할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하며 그렇게 생애 첫 영어단어 대결은 시작되었습니다.
결론은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단어, "냉장고(refrigerator)"를 몰라 패배했습니다. 리어카타고 마당을 한바퀴 돌며 좋아하는 사촌을 보고는 엉엉 우는 저. 그런 제 모습을 어머니는 보시고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왜냐고요?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야. 다음 번에 잘하면 되지"라며 격려해주셨거든요. 그것이 제 생애 첫 패배였습니다.
#2. "D에서 B+로!", 불굴의 배드민턴 사나이!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와 2학년을 맞이한 때, 또 한번 제 열등감을 크게 맛본 시기가 찾아옵니다. 1학기였나 2학기였나. 당시 실기평가로 배드민턴을 본다는 선생님의 말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운동엔 젬병이었거든요. 가끔 엄마랑 공원에 가 배드민턴을 치기도헀었지만 평가라면 상황은 달랐습니다. 다행히 저처럼 배드민턴에 익숙치 않은 친구들이 더러있어 그들을 위안(?)삼아 짝이랑 연습했었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들 실력이 일취월장해져있는겁니다. 저는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 했고요. 서브와 리시브 등 소위 '티키타카'를 어렵지않게 주고받는 모습들 보며 '내 라켓과 셔틀콕은 왜 그럴까?' 한탄했었죠.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팔을 허우적거리며 제대로 리시브 하나 못하는 제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보며 놀려대기 시작한 것이었죠. 오죽하면 체육 선생님도 "지금의 니 실력으로는 D등급이야. 좋은 점수 못받겠는데?"라며 걱정하실 정도였죠.
근데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제대로 해내보이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부터 라켓과 셔틀콕, 물통 챙기며 저만의 특훈을 2주간 진행했었습니다. 특훈이래봤자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학교 뒤편 공터에 가서 벽과 1:1 매치를 펼치는 것이었지만요. 가끔 매점으로 친구들 데려가 맛있는 거 먹여주며 살살 꼬셔 코칭 받기도 했지만요.
대망의 실기평가날. 제 번호가 호명되자 반 아이들은 마치 재밌는 구경이라도 난 듯 일제히 저를 쳐다봅니다. 민망함도 잠시, 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라켓을 들고는 상대쪽으로 서브를 넣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고요? 능숙하게 서브와 리시브를 해내는 모습을 보고는 놀람과 동시에 박수를 쳐주었죠. 체육 선생님도 한 마디 하셨고요.
"우리 형준이 많이 연습했구나. 정말 잘했네"
그 날 제가 받은 등급은 B+이었습니다. A나 A+는 아니었지만 제게는 그 이상으로 값진 등급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안의 한계를 넘어선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그외 여러 실패나 좌절한 경험들이 있었지만 특히 위 두 경험은 제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마음의 '힘'을 준 사례로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거라고, 기대도 안했었지만 끝내 성취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말이죠.
저도 했는걸요? 어디선가 두려움과 좌절로 힘들어하는 이름모를 분들에게 이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