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따돌림 당한 진짜 이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과거의 상처를 따라가다 보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왕따의 기억입니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도 아니고
상처가 될 만한 심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급식실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었고
조를 짜라고 하면 마지막까지 남았고
내가 얘기하면 전체가 잠깐 조용해졌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갔습니다.
그 짧지만 길게 느껴지던 순간
그 시간이 학기 내내 반복되었던 거죠.
시간은 많이 흘렀습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고, 이젠 그시절 애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따돌림의 영향은 남아 있습니다.
회의에서 내 의견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으면 심장이 덜컥하고
단톡방에서 내 얘기에만 30분째 답이 없으면,
내가 혹시 뭘 잘못 썼나 싶어 다시 읽어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나였을까요?
왜 하필 내가 따돌림을 당했던 걸까요?
그냥 운이 나빴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 나에게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아마 여러분은 그동안 계속 ‘자기’ 안에서 따돌림의 원인을 찾으셨을 겁니다.
내가 어두워서. 내가 눈치가 없어서.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데 심리학 연구들이 주목하는 곳은 개인의 특성이 아닙니다.
‘나와 교실 사이’ 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교실에 놓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따돌림에 대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어떤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는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아이가 자기 반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를 봤습니다.
그 결과 따돌림 피해를 예측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친구 수가 반 평균보다 적은 것.
그리고 반 평균보다 덜 시끄러운 것.
여기서 중요한 건, 조용하다는 게 그 자체로 문제가 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반이 시끄러운 반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만약 같은 성격의 아이가 전반적으로 차분한 반에 배정됐다면,
그 아이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을 겁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고요.
이걸 전문 용어로 『인물-집단 불일치』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내 특성이 아니라
내 특성과 그 교실 평균 사이의 거리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조용하고 어두워서 따돌림을 당했다”가 아니라,
“내 밝기가 그해 그 반의 기준보다 낮았다.”
그리고 이 기준은 반마다 다릅니다. 매년 바뀌기도 합니다.
작년까지 아무 문제 없던 아이가 반이 바뀌자마자
표적이 되는 일이 그래서 생깁니다.
분명한 건, 당신은 그 기준을 만들지도 않았고 고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이 높은 아이가
이후 더 따돌림의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경향은 확인됐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경향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 부분은 오해하기 쉬워서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친구가 생겨서 그 아이의 불안이 없어진 게 아닙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다만 그 불안 때문에 따돌림의 표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옆에 한 명이라도 지켜주는 친구가 있으면
누군가 건드리려 할 때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따돌림을 당했다 하더라도 이후 우울과 불안으로 남은 것은,
서로를 친구로 여기는 절친이 없는 아이에게서만 그랬습니다.
정리하면 친구 한 명이 두 가지를 막아준 셈입니다.
표적이 되는 것도, 당한 뒤에 그게 상처로 남는 것도.
즉 똑같은 성격이어도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렸습니다.
그럼 그 친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어린 아이가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반 배정은 학교가 했습니다.
전학 여부는 부모가 결정했습니다.
작년에 친했던 애가 올해 같은 반이 됐는지 아닌지는, 첫 학기 첫날 명단이 결정했습니다.
물론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어느 정도 가정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부분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당신이 고른 게 아니었죠.
따돌림에는 언제나 첫 번째가 있습니다.
첫 번째 놀림. 첫 번째 웃음. 첫 번째로 자리가 비켜진 순간.
그때 어떤 흐름이 이어졌나요?
선생님이 그 장면을 봤나요?
봤다면 그 놀림을 끊어주었나요?
반에서 한 명이라도 “야, 그만해”라고 해주었나요?
우리나라 따돌림의 특징 중 하나는 지속성입니다.
한 번 피해자가 되면 계속 그 자리에 놓인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처음 며칠이 1년을 결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첫 장면에서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걸 ‘해도 되는 일’로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학급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기도 합니다.
따돌림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의 반에서는
누군가를 괴롭힌 아이가 오히려 반에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같은 행동입니다.
어떤 반에서는 가해자가 외톨이가 되고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