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추석(秋夕) 이야기 3

생활(生活)의 예지(睿智)

byMorpheus

간밤에 핼쑥하게 졌던 열사흘 달이 오늘 초저녁에 붉은 기(氣)를 더하며 만월 (滿月)의 얼굴로 동녘 산봉우리를 타고 솟아오른다. 산촌(山村)은 하늘이 좁아서 그런지 온 동네가 달빛이 넘쳤다.



추석(秋夕) 보름달은 정말 밝았다. 어머니는"월광(月光)에 바느질"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하셨다. 실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웬만한 바깥일은 등불 없이도 했다.


추석(秋夕) 날의 보름달 Chat gpt제공


등유(燈油)가 귀했던 시절이라 송진이 많이 뭉쳐있는 a관솔에 불을 켜놓고 타작(打作)을 했다. 부엌에도 관솔로 불을 켤 수 있게 벽에 제비집같이 오목하게 만들어 두었다. 관솔은 워낙 그을음이 많아 어머니는 부엌일이 끝나면 콧구멍이 새까맣게 된다고 했다.


산촌(山村)에 그믐달이 지면 b월삭(月朔)과 초이틀날에는 달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서산(西山) 하늘가에 큰누님 눈썹 같은 가느다란 초승달이 얼핏 보였다가 사라진 날이 그 달의 초사흘이다.

초사흘달을 보면 한 달 내내 바빠진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듣지 못했다. 상현(上弦) 달은 만월(滿月)이 되는 순간 기울었다. 사람들은 어떤 권세(權勢)를 얘기하다 "달도 차면 기운다"라고 알듯 말듯한 말들을 했다.




추석 전날은 초저녁부터 제사상(祭祀床) 차리기에 집안이 바쁘게 돌아간다. 문중의 어른들이 와서 제사상 차리는데 한 마디씩 보탰다. c홍동백서(紅東白西)니 d조율이시 (棗栗梨枾)니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종국에는 할아버지가 정리를 하셨다.

삼촌이 밤의 e본뇌를 치는 손놀림은 잽쌌다. 칼날이 보이지 않았다. 밤을 육각으로 다듬었다. 배와 감을 깎을 때는 껍데기가 떨어지지 않게 단번에 끝냈다.

아이들은 빙 둘러앉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웠다. 삼촌은 가끔 잘못 깎아 제사상에 올릴 수없다며 배를 쪼개어 아이들에게 나눠어 주다가 할아버지의 눈총을 받았다. 삼촌이 고의로 잘못 깎았는지는 알 수없으나 할아버지의 야단을 맞아가면서도 조카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했다.




제사상은 북향(北向)을 하고 있었다. 제사상 앞에는 열두 폭의 병풍이 둘러쳐져 있고, 알 수 없는 한문(漢文) 초서가 아래로 병풍에 가득했으나 아무도 그 의미는 묻지 않았다. 병풍 뒷면은 목단화(牧丹花)가 울긋불긋 그려져 있었다.

밤늦게까지 어른들은 음식을 다 차려놓고 제사상 양측에 촛대를 놓으면 마무리가 되었다. f메와 갱(羹)은 제사 직전에 올린다고 했다. 미리 올리면 식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즈음에 외양간 옆 닭장에서 첫닭이 운다.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온 동네 닭들이 메들리로 따라 운다. 그리고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g자시(子時)가 지나는 시각이다.

어른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았다. 의관(衣冠)을 h정제(整齊)하고 할아버지가 앞줄에서 제문(祭文)을 읽고 문중어른들은 할아버지를 따라 절을 했다.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그리고 메와 갱을 올리고 절을 한 후 문을 닫았다. 혼령(魂靈)들의 식사시간은 정숙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을 하고 제사는 끝이 난다.




긴 하루가 지나고 어른들과 아이들은 사랑방과 안방에 흩어져 잠을 청한다. 동창이 밝아오면 일어나 i음복(飮福)을 한다. 어머니와 숙모는 음식을 소반에 담아 이웃에 돌린다. 종일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덕담(德談)이 넘치는 하루가 된다.

그리고 저녁이 오고, 산그림자가 내려와 동네가 어둑해질 무렵에 한가위 보름달이 환한 얼굴로 산마루에 솟아오른다. 그 밝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난여름의 모든 고단함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 보름달 밝음 속에 눅눅했던 시간들을 갈무리한다.


※작가님들, 온라인카지노 관리자님들 그리고 구독자님 여러분 즐거운 한가위 맞이하세요.

Morpheus 드림


註
a관솔 소나무 가지의 옹이
b月朔 음력 초하루
c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 흰색은 서쪽에 둠
d棗栗梨枾 대추 밤 배 감의 순서로 둠
e본뇌 밤 껍데기 속의 내피(內皮)
f메와 갱(羹) 제사상에 올리는 밥과 국
g子時 밤 11시에서 새벽 1시경
h整齊 의복 등을 가지런히 하다
i飮福 제물(祭物)들을 나누어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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