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生活)의 예지(睿智)
동네는 높고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지만 동구(洞口) 밖에는 제법 탁 트인 전답 (田踏)이 펼쳐져 있었다. 서편 산비탈에는 목화(木花) 밭이 있었는데 메마른 땅에서도 목화는 잘 자란다고 했다.
그 목화밭 한가운데 증조모묘가 있었다. 증조부가 살아계셔서 목화밭에 모셨다가 나중에 증조부가 돌아가신 후에 이장(移葬) 을 했다. 그런데 이장(移葬)하는 날 파묘 (破墓)를 해보니 증조모 유해가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모두 놀랐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여름철 할머니와 목화밭에 나와 a다래를 따먹어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목화꽃이 떨어지고 맺힌 어린 열매는 달큼하고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목화솜을 따야 하니 한두 개만 따먹어라 했다. 가을이면 산비탈에 눈이 내린 듯 목화들이 하얗게 솜꽃을 피웠다.
할아버지는 가끔씩 가을이 오면 "숙일 놈은 숙이고 드러날 놈은 드러난다."라고 하셨다.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벼나 조와 수수는 익으면 이삭이 무거워 고개를 숙이지만 보리나 밀은 익어도 빳빳이 고개를 쳐든다고 하셨다. 여름에 수확하는 곡식과 가을에 수확하는 곡식이 다르다는 말씀인 줄 알았다.
가을들녘 이미지 Chat gpt 제공
밤이 밤송이 안에서 굵어지면 밤송이가 터지고 알밤이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아리송했다. 사람의 인품(人品)에 대한 말씀인 듯했다.
추석(秋夕)이 가까워지면 삼촌은 방문 (房門)을 떼어내어 헌 문종이를 뜯어내고 새 한지(韓紙)로 문을 발랐다. 양지바른 곳에 세워두면 살문의 한지가 팽팽하여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니와 숙모는 유기(鍮器) 그릇을 마당에 멍석을 펴고 닦았다. 제기(祭器)들의 모양새가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닦아놓은 그릇들이 햇볕에 반들거렸다.
추석 준비는 멀리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좁혀나갔다.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이 먼저 오고 부엌일이 나중에 왔다.
음식은 제일 나중에 준비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냉장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오래 보관해야 할 음식은 서늘한 그늘이나 처마 끝에 매달아 두었다.
염장(鹽藏) 음식이 많았던 것이 보관 문제 였다. 명절 때 배탈이 많은 이유가 상한 음식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았다.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엿기름으로 단술을 만드는 일이 수월찮았다. 어머니와 숙모는 밤늦게까지 밥알을 삭히는 일을 살폈다. 수확한 조생종(早生種) 벼를 찧어 햅쌀로 밥을 지었다.
제상(祭床)에 올리는 음식들은 그해 산출 (産出)한 곡식과 과실들로 만들었다.
어찌 보면 추석(秋夕)은 서양의 "Thanks- giving Day"와 같았다. 감사의 대상이
다를 뿐이지...
햇밤 이미지 Chat gpt 제공
註
a다래: 산 속에서 자라는 넝쿨 다래와 목화의 어린 열매인 다래의 맛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