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상여(喪輿) 이야기 1

생활(生活)의 예지(睿智)

byMorpheus


뒷산 비탈 우묵한 곳에 "행상집"이라는 집이 있었다. 상여(喪輿)를 보관하는 집이라고 했다. 인적은 드물어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 았다. 아이들에게 그 부근에서 놀지 말라고 했다. 기둥과 a인방(引枋) 보, 천장의 대들보는 붉은색과 푸른색 초록색으로 알룩달룩하게 칠해져 있었다.

학령(學齡) 전에 함께 놀아주시던 할머니가 차츰 기억력이 쇠하시더니 어느 날 몸져 누우셨다. 오지 산촌에서 대도시의 병원에 진료를 받으려 간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 (焉感生心)이었지만 혹시 다녀오셨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 이후 안방 구들목에 할머니는 정물화 (靜物畵)처럼 누워만 계셨다. 움직임도 말도 다 잃으시고 눈만 조용히 껌뻑거리셨다. 산 넘어 멀리 b진외가(陳外家) 쪽에서 할머니 병문안을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어머니와 숙모는 조용히 초상(初喪) 치를 준비를 하셨다. 주로 남들이 보지 않는 밤중에 수의(壽衣)와 상복(喪服)을 준비 하셨는데 참 복잡했다. 어른들은 c굴건제복 (屈巾祭服)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숙모는 굴건(屈巾)과 제복(祭服)을 종류에 따라 늘어놓고 개수를 맞춰가며 지으셨다.

삼촌은 뒤뜰 울타리에 서있는 오동나무를 타고 올라 곧은 가지들을 잘라 내려왔다. d상장(喪杖)을 만든다고 했다.

전깃불이 없던 어둑한 밤에 호롱불 아래서 어머니와 숙모의 두런두런하시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힘든 산촌의 삶을 꾸려 가면서 짬짬이 길쌈을 하고 베를 짜 할어머니 가시는 길에 입혀드릴 수의(壽衣)와 상복 (喪服)들을 지었다.

돌아보면 그 당시 어머니의 삶이 애달프기 짝이 없다. 할머니도 또 그 윗대의 할머니도 같은 길을 사셨겠지 하는 생각에 이르니 숙명(宿命)이란 말에 생각이 멈췄다. 그 길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궤도(軌道)였으리라.

그 시절 시골의 법도(法道)와 관습(慣習)은 너무도 단단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었다. 특히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대한 절차나 실행은 엄했고 종갓집 며느리 들은 임의(任意)로 무엇하나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단지 조용히 따를 뿐이었다.

입관(入棺) 후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모습은 생생하다. 어머니가 짠 삼베로 지은 수의를 입고 샛말갛게 잠자듯 가셨다. 따뜻하셨던 눈길은 다시는 볼 수없었다. e가개(加蓋)까지는 짧았고 서러움이 북받쳐 곡(哭) 소리가 높았다.

초상(初喪)을 치르는 절차마다 어른들의 곡(哭) 소리의 높이가 달랐다. 문상객 ( 問喪客)이 빈소에 들어서면 아버지와 삼촌의 "애고애고" 곡(哭) 소리는 높았고, 문상객은 "어이어이" 하며 절을 하고 상주 (喪主)들과 맞절을 하며 문상(問喪) 했다.


빈소(殯所)에는 향연(香煙)이 자욱하고 낮은 곡(哭)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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