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상여(喪輿) 이야기 2

생활(生活)의 예지(睿智)

byMorpheus


요즘은 사람이 집에서 죽더라도 장례 (葬禮)를 병원에서 치르지만 그때는 병원이나 외지에서 죽어도 빈소(殯所)를 집안에 차렸다.


할머니의 빈소는 오래도록 누워계셨던 안방에 차려졌고 마당에 큼직한 천막이 세워졌다. 조문(弔問)을 마친 문상객 (問喪客)들은 마당의 천막으로 내려와 단출한 독상(獨床)의 술상을 받았다.


할머니의 장례(葬禮)는 마을의 행사였다. 온 동네 아낙과 청장년(靑壯年)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대사(大事)였다. 하지만 모든 준비와 절차가 일사불란(一絲不亂)했다. 집안과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이 이미 몸에 익은 절차가 되어있었다.


상주(喪主)인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는 일체 일에 간여하지 않고 문상(問喪)만 받았다. 수많은 조문객들에 대한 접대는 어머니와 숙모가 맡아서 조용히 치러냈다.


장례의식은 고금(古今)을 통해 종교와 관습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단순히 망자(亡者)를 매장하는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육신(肉身)의 삶을 종결하고 혼백(魂魄)을 내세(來世)로 송별(送別)하는 행위를 진행하는 절차다. 그래서 조신 (操身)하고 엄중하다.


대문 밖에서는 뒷산 행상집에서 갖고 온 상여(喪輿)가 꾸려지고 있었다. 산 자(者)를 나르는 가마와 사자(死者) 나르는 상여 (喪輿)의 구조는 비슷했다.


가로와 세로의 기둥을 엮는 a장강(長杠)과 횡강(橫杠)의 중앙에 관(棺)을 놓을 소방상(小方牀)이 자리한다. 그리고 상여의 지붕 격인 별갑(別甲)과 온갖 장식들이 따른다. 요즘은 번쩍이는 고급 리무진으로 운구하지만 예전의 상여는 투박하고 을씨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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