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와선명(蛙蟬鳴)

생활(生活)의 예지(睿智)

byMorpheus


산촌(山村)은 늘 그랬다. 고요가 찾아오면 소리는 분명해졌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소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는 먼 곳 같기도 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어디를 가나 그 자리에 속하는 소리가 있었다.

분명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웃음은 인간에게 속한 감정의 소리며, 인간의 소리들은 자연에 속한 소리가 아니다. 그 산촌에서 나는 소리는 그 땅에 속한 천연(天然)의 소리다. 산촌의 여름은 소리로 시작했다.

장마가 시작하려는지 눅눅하고 무거운 저녁 공기가 대지(大地)를 감싸고 흐르면 풀숲 어디선가 참개구리 한 마리의 낭랑(朗朗)한 울음소리가 터진다.

이내 덩달아 냇가의 개구리 떼의 합창이 벌판에 가득하다. 마치 원래 있었던 소리같이 밤새 벌판에 머문다. 비라도 내려 냇가에 물이 불어나기라도 하면 더 요란하게 울어재낀다.


"어머니 무덤이 떠내려간다. 개골 개골 개골.."

밤새 비가 내려 개울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새벽녘에 할아버지는 a도롱이를 어깨 위에 걸치고 사립문을 나서신다. 긴 자루의 가래는 개울물을 건너실 때 수심을 재는 길잡이가 된다.

논에는 물이 가득하여 논둑을 낭창거리며 넘친다. 물고를 낮추어 논물을 조절한다. 그새 자란 논둑의 풀을 베고 논도랑에 쌓인 모래자갈을 파내어 물길을 열어가신다. 밤새 그렇게 울어대던 개구리는 울다 지친 듯 아침이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도랑물 흐르는 소리만 찰랑거린다.

장마가 끝나고 눅눅한 기운이 물러가면 버드나무 이파리들이 생기 가득하게 여름 햇볕에 반짝인다. 어느 가지에서 우는지도 모르는 참매미의 칼칼한 합창이 시작된다.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끝내면 또 다른 매미가 꼬리를 물고 운다. 그리고 수많은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길게 이어진다.

매미 울음소리는 한 여름의 소리요 존재의 알림 소리다. 칠 년이란 긴 시간을 어두운 땅속에서 기다렸던 소리다. 그러나 매미는 그 인고(忍苦)의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매미의 울음소리에는 한낮의 시간이 짧다는 여운 (餘韻)만 길게 남긴다.

대낮의 햇살을 등뒤로 받아내며 김매기를 끝내고 점심을 드신 할아버지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b장죽(長竹)을 물고 스르르 오수(午睡)에 드신다. 매미소리에 잠이 드신 지는 분명치 않다.

채전밭 끝에 풋감들이 조롱조롱 달린 감나무 아래 어머니는 매미소리에 시름을 놓으신다. 매미소리는 솔바람 소리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그 시절 무성(無聲)의 여름 산촌에 매미 소리가 없었다면 한낮은 얼마나 적막 했을까? 밤새 울어주던 개구리울음소리가 없는 여름밤은 또 얼마나 삭막했을까?

그 시절 그 산하(山河)에는 언제나 와선명 (蛙蟬鳴)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의 거친 삶의 한숨소리마저 자연이 조용히 품어주었다.

註
a도롱이 짚을 엮어 만든 비옷
b장죽(長竹) 대나무로 만든 긴 담뱃대



작가의 이전글(에세이)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