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워낭소리

생활(生活)의 예지(睿智)

byMorpheus

증조할아버지가 기거(起居)하셨던 사랑채에 딸린 외양간은 엄청 넓었다. 사랑방 쪽으로 큰 무쇠가마솥이 걸려있었고 안쪽에는 장작 더미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외양간 문쪽에 통소나무를 파서 만든 큼직한 구유가 놓여 있어 딸린 새끼 암소와 같이 쇠죽을 먹었다.

그 암소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살았는데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직 새끼를 낳고 있었으니 노년 (老年)은 아니었으리라.

참 잘 생긴 암소였다. 껌뻑이는 커다란 두 눈망울이 순박하고 어리숙하게 생겼는데 황금빛 털이 미끈했다. 할아버지와 삼촌의 목소리는 용케도 알아들었다. 할아버지가 쇠죽이나 여물을 넣어주면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목에 달린 방울을 딸랑거렸다. 그 워낭소리가 정겨웠다.

할아버지는 그 암소를 짐승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증조부 방에 군불을 지핀다거나 쇠죽을 퍼줄 때도 할아버지는 암소의 등을 긁어주며 대화를 앞세웠다. 할아버지와 암소 사이에 격식(格式)의 경계가 없었다.

"아버님 따뜻하게 주무시라고 군불 넣어드려야지"

"많이 먹어라"

"오늘 쟁기 끈다고 힘들었지?"

구루마를 끌고 읍내장(邑內場)에 다녀온 날이거나 밭갈이라도 한 날이면 할아버지는 암소에게 참 잘해주셨다. 긁개로 등을 긁어 주시고 쇠죽도 특식이었다.

보통은 잘게 썬 볏짚과 콩깍지를 쌀뜨물로 삶아서 쇠죽을 끓였는데 거기에다 할아버지 가 반주(飯酒)로 드시는 막걸리를 두어 사발 부어 주셨다. 피로 회복제라고 하셨다.

산촌(山村)은 삶의 환경은 여느 집이든 비슷했지만 유독 할아버지집에는 함께 살아가는 짐승이 많았다. 짐승을 키운다는 의미보다 그냥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었다.

힘든 일은 암소가 힘을 보탰고, 마루밑에는 누렁이가 손님이 오면 짖으며 알렸다. 헛간의 암탉들은 거르지 않고 매일 대여섯 개의 따끈한 달걀을 낳아주었다. 목덜미가 붉그스레 한 장탉은 목청껏 새벽을 알렸고 어머니는 때를 맞춰서 제사상을 차렸다.

삼촌이 쟁기를 지고 앞세운 암소의 목에 달린 워낭소리는 어린 눈에는 잔잔하고 평온하게 들렸다.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산촌의 하늘은 넓지 않았다.


그 하늘 아래의 좁은 산비탈의 땅을 일구며 살아냈던 산촌의 삶은 그 워낭소리처럼 낭랑(朗朗) 하지는 않았다. 하루일을 마치고 귀가한 마구간은 암소가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피곤에 절어 밤새 드르렁거리며 코를 고시던 할아버지의 삶과, 그때 그 산촌(山村)에서 함께 힘든 일생(一生)을 살아야 했던 암소의 질박(質樸)했던 "삶의 워낭소리"가 보리밭 이랑을 따라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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