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25 단상(短想)

세월(歲月)의 그림자

byMorpheus


그 흔들림과 혼란이 유년기(幼年期)에 각인된 영상이 남아 기억되는 것인지, 아니면 훗날 듣고 배운 이야기들이 덧입혀 기억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고 또렷하다. 단지 흑백의 활동사진처럼 남아있다.

울퉁불퉁한 도로변, 버드나무 가로수의 이파리가 비를 맞고 바들거리며 도열 (堵列)하고 있고, 여기저기 파인 비포장 도로의 물구덩이에 고인 흙탕물이 군트럭들의 질주에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흙탕물은 버드나무 밑동을 세차게 후려치곤 했다.

한 차례 군트럭들이 소란스럽게 지나간 뒤, 비에 젖어 추레해 보이는 미군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표정은 밝고 들뜨있었다. 그 행렬의 끝에는 코를 흘리며 꾀죄죄한 어린 조무래기들이 졸졸 따라 다녔다. 천조각으로 아랫도리만 감춘 발가벗은 머슴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북쪽으로 향하는 국도변에 조그마한 시골의 국민학교가 논밭에 둘러싸여 있었고 운동장은 꽤 넓었다. 해가 질 무렵에 미군들이 그 학교 운동장에 집채만 한 텐트들을 쳤다. 어린아이들이 텐트 주변을 들락거려도 미군들은 내쫓지도, 귀찮아 하지도 않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웠는지 "기브미 껌, 기브미 쪼코레뜨"하며 미군들을 따라다녔다. 미군들은 C-RATION 박스를 뜯어 아이들에게 통조림 캔을 나누어 주었다. 어른들에게는 담배도 주었다. 미군들은 아이들에게 뭔가 주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도변의 오두막집에는 대문이 없어 아무나 들락거렸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미군 병사들이 군복 빨랫감을 한 아름 들고 와서 어머니께 "워쉬두, 워쉬두" 하면서 세탁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아침까지 세탁해 달래며 통조림이며 과자와 담배가 가득한 박스를 받으란다. 어머니는 안 주셔도 된다며 사양해도 미군들은 막무가내로 박스를 두고 갔다.

어머니는 논도랑에 흐르는 맑은 물로 옷들을 빨아 밤새 말려 숯불 다리미로 다려서 미군에게 돌려주었다. 미군들은 또다시 고맙다며 선물들을 두고 갔다.

그때 어머니와 미군들이 소통했던 그 영어를 한참 뒤에야 이해했지만 그 시절 식자층 (識者層)에 속했던 어머니였지만 미군들과 의 대화는 온몸으로 했으리라. "Wash do, wash do, next morning, okay?..."

1950년 6월의 전쟁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 시절과 그 시절을 관통하며 살아낸 우리와 우리 부모들의 삶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시절 그 힘들었고 거칠었던 삶을 살면서 우리는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살아내기가 너무 힘들어 그럴 여유가 없었다.

1950년 대의 국민학교의 강당(講堂)에는 6.25 남침을 성토(聲討)하는 웅변대회가 오늘날 "American God's Talent" 쇼처럼 열렸고 박수 속의 어린 변사(辯士)들의 손짓과 웅변은 메아리처럼 강당을 울렸다 사라졌다.

" 모두가 잠든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불의(不義) 침략으로 일어난 6.25 전쟁은 순식간에 한강을 넘어 물밀듯이 남으로 남으로.." 웅변의 시작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전쟁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불안한 얼굴에서, 도로를 질주하는 군트럭 소리에서, 그리고 북진 (北進)하는 유엔군의 행진 속에서 "큰일" 이 터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큰일"을 "6.25 사변(事變)"이라고 불렀다.

흑백의 기억들이 쌓여가던 1950년 대의 흔들림과 혼란의 삶은 어둡고 칙칙했으나 미몽(迷夢) 속에서도 문명(文明)을 향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삶은 이어갔다. 웃어른들은 어둡고 무거운 힘든 삶 속에서도 자식들의 손을 놓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숙명(宿命) 같은 삶을 살아냈다.

1950년 대 중반에는 멀리 월남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했다. 그때는 남의 나라 이야기를 알지 못했으나, 1964년부터 월남파병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지원자 모집에 대한 이야기는 가난했던 시골출신 병사들에게 유혹처럼 번졌다.

그리고 이웃집에도 멀리서 날아온 비보 (悲報)에 통곡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다.

6.25 사변(事變)이 이제 역사바카라 속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부모와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불의(不義)에 대한 울분,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殘骸), 전화(戰火)로 다 타버린 민둥산, 그리고 거리를 서성이며 끼니를 걱정했던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少年不識世間苦
老去方知歲月深

어렸을 때는 세상의 고단함을 다 알지 못했지만,

늙어서야 그 세월의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네.

내일 모래가 6.25 전쟁(戰爭)이 발발 (勃發) 한 지 일흔여섯 해가 되는 날이다. 지난 일들 은 지나갔지만, 죽은 자들의 삶을 기억한다. 역사(歷史)는 사자(死者)들의 기록이지만 산 자(者)들이 기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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