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歲月)의 그림자
그 시절, 지금 쯤 벌판에는 푸르게 출렁이던 보리이삭이 까슬하게 영글어 담갈색 물결이 펼쳐진다. 보리밭이랑에 둥지를 틀고 새끼 들을 키워냈던 종달새들도 떠나고, 작열하는 태양이 벌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개울가 수양버들은 내리쬐는 한낮 열기에 축 늘어져 있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下校)하는 꼬무레기 국민학교 아이들이 땀국이 쪼르르 흐르는 얼굴을 하고 개울물에 풍덩 뛰어든다. 옆구리는 살이 붙지 않은 갈비뼈가 앙상하고 얼굴은 누르죽죽하여 황달기(黃疸氣)가 완연하다.
시골의 유월은 지난해의 묵은 양식이 동이 나고 보리수확 전까지는 견디기 힘든 허기 (虛氣)로 헐떡인다. 사방을 둘러봐도 양식이 될만한 것이 없다.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었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섰다. 어머니들은 산나물을 뜯으러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가까운 야산 에는 뜯을 나물이 사라지고 깊은 산속으로 찾아들어갔다.
요즘은 놀이 삼아 낚시를 하고 천엽(川獵)을 하지만 그 시절에는 삶의 수단이고 방식 이었다. 그래도 오염(汚染)되지 않은 산하 (山河)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개울에서 물고기나 가재를 잡아서 구워 허기를 달랬다.
유월에 걷어들이는 밀과 보리, 그리고 감자는 시골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생명의 양식과도 같았다. 그 허기(虛氣)를 넘어야 했던 그 언덕을 우리는 맥령(麥嶺),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그 시절 하교(下校) 길에 남의 집 밀밭에 들어가 설익은 밀이삭을 뽑아 짚불에 그을려 손바닥으로 비벼 훅하고 불어 입에 틀어 넣었다. 그리고는 양볼때기를 시커멓게 검정칠을 하고 다녔다. '밀사리' 라고 했다. 밭주인에게 들켜도 사람들은 관대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는 항상 설익은 과일 이며 곡식이 등장한다. 익을 때까지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했던 허기(虛氣)가 아릿하게 떠오른다.
우물가 앵두는 빨갛게 익기도 전에 사라졌고, 채전밭 구석의 설익은 참외의 쓴맛은, 허기를 참지 못하는 자식들을 지켜봐야하는 어머니 의 한(恨)과 아픔과 애처러운 마음과 같았으 리라.
그래서, 그 맥령(麥嶺), 보릿고개는 지난 세대가 넘어온 가장 힘들었던 고갯길이었고, 잊혀지지 않는 아픔의 향수(鄕愁)로 새겨져 있다.
麥熟黃雲起(맥숙황운기)
人間舊憶深(인간구억심)
보리가 익어가니 황금빛 구름이 일고,
사람 세상에는 옛 기억이 깊어만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