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무렵, 내게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by정지우

서른 무렵, 내게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이십대를 함께했던 대학 동기들은 이미 모두 취업하고,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 떠나 있었다. 대리가 되고, 아파트 대출 받고, 결혼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는 친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수료만 한 채 도망치듯 나온 뒤로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그냥 그들 중 누구도 만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덩그러니 섬처럼 놓여 있었다. 가족은 먼 지방에 있었고, 나는 스무살 때부터 살던 대학 앞 골목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만나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은 취업 준비 스터디 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대학생들이었는데, 그래도 편견 없이 대해줘서 고맙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 무렵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나의 뭘 보고 연애했나 싶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 아내의 친구들은 모두 나와의 연애와 결혼을 반대하거나 탐탁치 않아 했다.

바카라 몇 권을 썼다곤 하지만, 건전하게 온라인 게임 다니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수상한 인간'이었다.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에 성실하게 다닌 아내가 이상한 놈한테 홀렸다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모자무싸'의 황동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른의 '유사 황동만'이랑 연애하는 걸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도 없고, 온라인 게임도 없고, 뭐, 딱히 미래나 다른 기반도 없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슬롯적인 커리어도 그냥 없는 상태였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런 내가 부끄러워서였던 것 같다. 별로 만날 자신도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미웠던 걸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그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자리잡고, 궤도에 올라서고, 소속이나 직업이랄 게 생기면, 나도 사람들을 당당히 만날 수 있껬지. 그런 날이 언제 어떤 식으로 올지는 몰랐다. 당시 나는 기자나 PD가 되고 싶어, 언론사 시험을 부지런히 쳤는데, 못해도 30번은 떨어졌으니까. 아마 논술학원 강사가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몇 년을 보내고 나서, 그나마 만학도에 가까운 입장으로 로스쿨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정말 몇 년만에 '소속'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토록 안심이 되었다. 뭐가 됐든, 내게는 '수험생'이라는, '학생'이라는 신분이 생겼고, 그 소속 안에서 공부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 크게 위안이 되었고, 안정감이 들었다. 뭐랄까, 약간 내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안정감을 얻은 느낌이었따. 항상 불안하게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며 글쓰며 견디다가, 누가 인생길을 정해준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이후 졸업하고 삼십대 중반 처음 신입사원이 되어, 온라인 게임에 다니기 시작할 때도, 역시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듯한 그 '안정된 소속감'이 나쁘지 않았다. 그대로 평생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매일 출퇴근하며,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아파트 사고 하면 될 것 같았다. 온라인 게임 상사들이 간 길을 나도 따라가면서, 그대로 평생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일시적으로 얻은 듯한 했던 그 '안정적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 이게 내가 원한 삶이 아니라고, 무언가 더 이상 이 구속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온라인 게임을 뛰쳐나와 버렸다. 그게 어언 3년 전이다.

마흔이 된 지금 입장에서, 서른을 바라보는데, 묘하게 내가 그간 지나온 삼십대 전체보다 서른의 내게 동질감을 느낀다. 기묘한 일이다. 나는 그 때처럼, 뚜렷한 소속이랄 것 없이, 다시 글쓰는 삶으로 돌아와있다. 물론, 그 때의 불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나의 안정적인 소속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그간 쌓아온 나의 시간으로부터 온다. 계속하여 글을 쓰고 좋은 관계들을 만들며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소속에 의지하지 않고, 글을 써내는 힘과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계 맺으며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내게는 계속 쌓아가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는 믿음. 무엇보다 나의 글이 닿아갈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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