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자무싸'를 보며 드는 위화감

by정지우

'모자무싸'를 보며 문득 드는 위화감이 있다. 40대 중년 아저씨들이 잔뜩 나와서 단톡방이니 8인회니 하며 지지고 볶는데, 어쩐지 와닿지가 않고 낯설기만 한 것이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같은 40대 아저씨인 나와는 그들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삶들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대낮에도 '아지트'에 모여 술 마시고, 매일같이 만나고, 길 가다가 시도 때도 없이 온 동네 친구들이 마주치는데, 저런 삶은 내게 20대에나 약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흔쯤 되고 나니, 아이 키우고, 가정을 돌보고, 일하고 돈 걱정하며 살다 보면, 가장 친한 친구도 1년에 몇 번 따로 시간내어 만나기 힘들다. 친구들이 매일같이 모이는 아지트가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십대에야 과방이나 동아리방에 가면, 늘상 늘어져 있는 녀석, 성실히 수업들으며 오고가다 환하게 인사하는 녀석, 단톡방에 들어왔니 나갔니 하며 소외감이니 하는 걸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40대쯤에는 다들 살기 바쁘고, 각자의 가정이나 세계가 있어, 별로 그럴 여력도 없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박해영 작가의 세계에는 늘 '부모와 어린 아이'의 애착있는 관계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주연으로 중년이 등장해도, 딱히 아이는 없거나 멀리 떠나 있어 나오지 않는다. 아이가 삶에 별 비중이 없는 것이다. 아이가 주는 삶의 가치나 의미는 딱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흥미롭게도 '부모자식' 관계가 많은 경우 '남여' 관계로 대체되어 있다. 남주는 여주의 아빠나 아들 역할을 하고, 여주는 남주의 엄마나 딸 역할을 한다.

'모자무싸'에서 변은아가 황동만을 바라보는 태도는 어딘지 엄마가 아들을 보는 태도 같은 면이 있다. 연민과 공감을 보내고, 경찰서에 찾아가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챙겨주고 싶어한다. 나는 내 새끼 편이고, 내 새끼 빛나는 면모는 내가 발굴하고 드러내고 싶어한다. 조연인 박경세와 고혜진 부부는 더하다. 박경세는 그냥 고혜진의 철없는 아들이다. 고혜진이 박경세의 뭐가 좋아 결혼했나 싶을 정도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은 이지안의 아빠 같았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구씨에게 '내 말 듣고 정신차려라'고, "추앙"하라고 하며, 엄마 역할을 자처한다. 나아가 '모자무싸'에서도 그렇지만, 친구들이나 형제들이 서로의 보호자와 부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박해영의 세계는 매우 가족적인데, 전통적인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모두 연인 관계나 친구 관계로 투사 또는 대체되어 있다.

이 점은 아마도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특이한 세계관이라고 할 법하다. 매번 '새로운 가족형태'를 다루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박해영식 방식이랄까. 박해영 작품에 등장하는 종종 고루한 포인트들도 고루해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이 특이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뭔가, 내가 느껴온 삶과 정서적으로는 닮았는데, 형태적으로는 한번도 닮은 적이 없다. 20대의 정서를 40대들이 나누고 있고, 아이에게 느낄 감정을 연인끼리 나누고 있으며, 가족 공동체에서 느끼는 걸 동네 공동체에서 느끼는 식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박해영 작가가 다루고 싶은 구원 서사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람의 연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그는 알게 모르게, 일종의 대안적 공동체, 대안적 연대를 실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방일지'처럼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 동네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오랜 친구들의 연대, 일하다 만난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로 바뀌는 순간, 나이 들어도 같이 사는 형제자매의 돌봄. 이런 것들이 묘한 희망을 남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볼 때마다 새롭고, 동시에 환상 속 이야기 같기도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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