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몸부림

byJin ㅡ 이유림



우연히 한강작가님의 오래된 인터뷰를 봤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image.png



나는 사람에 대한 혐오가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잠시 가려둔 상태에 가깝다. 모든 사람을 내가 가진 기본 디폴트 값인 혐오로서 바라보게 되었을 때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힘든 것은 나이므로.


이 마음이 최고조 일 때는 사람이기 싫었고, 입버릇처럼 나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몰랐겠지만, 나에게 나비가 되고 싶다란 것에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 전제의 바탕이 된 것이 나와 같은 시절에 같이 큰 사람들이 기억할까 싶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동화에서였다.


어머니는 이 안에 어떤 내용인지 읽지 않고 그저 바카라이라고 하니 바카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거금을 들여 전집을 사주셨다. 1994년이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분히 의도가 의심되는 동화바카라이었다. 어떤 의도였길래 아이들이 읽는 동화바카라에 이런 내용을 넣을 수 있는지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이 제목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었다.



image.png
image.png



간단히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일 열심히 하는 노루 우체부 아저씨를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겼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노루 우체부 아저씨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괴롭혔다. 노루 우체부 아저씨는 결국 무일푼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쫓겨나게 된다.


노루 우체부 아저씨의 부재는 굉장했다. 우체국이 마비가 될 지경이었고, 그제야 노루 우체부 아저씨 혼자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열심히 했는지 알게 된 국장이 노루 우체부 아저씨 집에 찾아갔지만, 사람들의 악의에 지쳐버린 노루 우체부 아저씨는 절망하며 영원히 깰 수 없는 풀을 달여 먹고 목숨을 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동화바카라을 그저 동화바카라이라 볼 수 없었다. 그때 나의 상황에 대입해 보며 세상의 약자는 영원히 약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세상도 그렇다. 극단적인 예로 각종 범죄에 노출된 약자들이 죽어야지만 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저 드러나기만 할 뿐.


많은 시간들이 지났지만 이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이 생을 마감했다.(생을 이다음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삼 십 분도 넘게 고민했다. 사실 어떻게 호칭을 해야 할지도 어려웠다. 혹시나 유가족이 보게 되었을 때 상처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타까웠다.


끝내 생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던 생존자의 뉴스를 바라보며 허망하고 참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살아가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어떤 말을 듣고 버텼을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친구들 몫까지 살아야지.

살아 돌아왔으니 된 것이 아닌가.

더 열심히 살아야지.

뭐가 힘든데. 죽은 애도 있는데.


저 말들이 생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말인지 폭력적으로 다가오는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다고 좋게 포장해도 그러니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어떻게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게 돌아왔다고 해서 그 일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번 겪은 일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진다면 원망이나 복수, 슬픔, 상처, 아픔, 증오, 상실감, 후회와 미련, 분노, 고통과 같은 단어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살아 돌아왔다는 것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족쇄가 채워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살아난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살아난 것에 대한 죄바카라감. 그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나마 어떤 사람들은 양보해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악의적으로 생존자들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악의적인지 깨닫지 못하는 건지 묻고 싶다. 악의를 몰라서 저지르는 건지, 악의인 줄 알면서도 저들이 자신들의 말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인지.


자신은 그냥 말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겠지.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받아들이는 당사자를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들은 자신들 앞가림도 힘들다고 말하며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자신들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처럼.


숨 쉬듯 자연스럽게.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게. 숨 쉬듯 자연스럽게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를 때. 이 생각 끝에 오늘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이야기가 생각났고, 왜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새벽이었나?

아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더니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뭔지 들어나 보고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이면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나 남자친구한테 바람피운 게 들켰어."

"그런데?"

"남자친구가 자기 소원 하나 들어주면 용서해 준다고 해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 남자친구랑 한번 자줘."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뭘 해달라고?"

"남자친구랑 한번 자달라고 친구랑 자게 해 주면 용서해 준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러니까."

"나랑 친구잖아 너.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너 나를 친구로 생각하긴 했니?"

"...."

"다신 연락하지 마."


사람들은 가끔 크게 오해하는 것 같았다. 편안한 것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것에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를 어떤 식으로 취급하고 있는지 나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했길래 그런 무례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어볼 걸 그랬다. 그 말을 끝내 꺼내지 않았던 건 싸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움은 나에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했으니까.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호구 취급하는 인간이 더러 있기 마련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해 줄 때엔 내가 감당 가능한 만큼의 범위라 해 준 것뿐. 나에게도 마지노선이 존재한다는 걸 그들은 자꾸만 잊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면 예전엔 나를 탓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문했다.


새벽에 그 전화를 받았던 때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학교를 다니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쪽잠을 자며 과제를 하는 내가 들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기에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실제로 자신은 피해를 보지 않고서는 피해 본 그 사람이 잘 못 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잘못하지 않아도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저들의 문제임을. 서로 같은 입장에 선다고 한들 상대방은 내가 될 수 없을 터였다. 나 역시 상대방이 될 수 없듯이.


나는 내가 사람인게 싫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에 대한 혐오는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도 있었다. 저들과 내가 다를 바 없으니까. 나 역시 순결무구한 건 아니니까. 타인이 혐오스럽다면 나 역시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찬란한 것들이 부러웠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없는 것들.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런 물질적인 것들은 부럽지 않았다. 물질적인 것들은 손에 잡히는 것이니까. 나는 결핍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고 싶다.


바카라 소개를 쓰려다

여기까지 흘러와 버린 사연.

이게 맞나..

잠이나 자야겠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