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절망사를 이런 식으로 적어보고 싶었던..
https://fishingproductfr.com/@jinf4sb/200
절망사를 완결하고 나니, 원고 전체를 '나'가 아닌 시점으로 한 번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워낙 '나' 중심으로 쓰인 원고라 시점을 바꿔보니 이게 맞나...? 싶은 애매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은 이 글, 작년에 써두고 작가의 서랍 속에 숨겨두었던 원고인데요.
그중 한 편을 공개해봅니다.
덧붙이자면 전문적으로 글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저도 읽으면서 조금 어렵습니다. "소위 작가님의 작품이 되게 써라" 같은 조언도 틈틈이 보긴 했지만... 보기만 했지 고치진 않았... 크하하. 그리고 역시 실제로 해보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덜어내기가.
독백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OTL 게다가 완전 초안이라 지금의 제 글과는 느낌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몇 개월째 발행 버튼을 눌렀다 취소했다, 눌렀다 취소했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https://youtu.be/T7ITnzIhqQ4?si=17DvGuJhI89fFjUE
강이서를 연상시키는 집착의 맛 노래.. 구해왔습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니 어쩐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그냥 던져?! 이런 생각이. 그래서 던집니다? 잘 받으세요.
디지털 타임캡슐이 있다면,
그건 오래된 외장하드가 아닐까.
이서는 외장하드 속 오래된 파일들을 정리하다 ‘너’를 발견했다. 010101로 저장된, 너의 조각들. 그 속의 너는 모두 뒷모습이었다. 이서는 한참을 말없이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너를 향해 셔터를 눌렀던 걸까. 네 뒷모습이라도 마음속에 남겨두고 싶었던 걸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도 분명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었겠지.
이서는 네가 담긴 사진들을 선택한 뒤 망설임 없이 Del 키를 눌렀다. 단순히 사진을 지우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 마음을 버리기 위한 의식이었을까. 여전히 ‘너’를 향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서를 슬프게 했다. 어차피 이서의 차례는 오지 않았을 터였다.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이서는 눈을 감고 처음 너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그러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이.
“모임 같은 거 귀찮은데...”
“아, 진짜 괜찮다니까.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도움 될 거야. 같이 하자아아아아아.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같이 가자!”
친구는 이 모임이 얼마나 좋은지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이서를 기어이 약속 장소까지 끌고 나왔다. 이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친구가 쩌렁쩌렁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서준! 준! 야아!!!! 유서준!”
회색빛이 감도는 차가운 공간.
조금은 쌀쌀한 날씨.
가벼운 옷차림으로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너.
그 순간 이서의 몸은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의식은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이런 걸까.
아니, 어쩌면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첫 만남이었을지도 몰랐다.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던 이서에게 친구가 다가온 서준을 소개했다.
“여기는 유서준. 여기는 강이서. 동갑. 이서는 오늘 우리 모임 체험하러 왔어.”
이서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아... 안녕. 잘... 잘 부탁해.”
서준은 이서를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오늘 즐거웠으면 좋겠다.”
유서준.
이서는 그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유서준. 서준.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외우듯.
그날 이후 서준은 이서에게 모든 것이 궁금한 사람이 되었다.
말투도. 눈빛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담담함까지도.
서준은 이서에게 낯선 세계 같았다.
서준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모임에 나왔다.
몇 번을 허탕을 쳤는지.
오늘은 서준이 모임에 나온 날이었다.
이서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 해?”
이서의 물음에 서준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어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음악 들어.”
“무슨 음악?”
서준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듯 웃으며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들을래?”
“진짜? 그래도 돼?”
이서는 기쁜 얼굴로 이어폰을 받아 들고 옆에 앉았다.
줄이 짧아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서준의 옆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세상이 멈춘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상하게 울렁거리는 마음을 감추려 애써 노래에 집중했지만,
결국 어떤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그날의 서준은 어딘가 슬퍼 보였고,
그 노래는 이상할 만큼 그런 서준과 잘 어울렸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이서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호감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았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
선명하게 나뉘어 있다고 믿었던 이서의 세계가 서준을 만나 그 경계가 조금씩 흐려졌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논리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
절박한 누군가가 어느 날 문득 신을 만난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이서는 서준을 만났고, 서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서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날 이후,
이서의 종교는 서준이었다.
이서는 끝없이 서준의 곁을 맴돌았다.
모임이 없는 날에도 연락을 했다.
서준은 그런 이서를 밀어내지 않았다.
신을 향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듯, 이서 역시 서준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꽃봉오리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듯, 자꾸만 피어나는 마음을 감출 수도 없었다.
결국 이서는 서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 너 좋아해.”
서준은 잠시 이서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오래전부터 준비해 둔 대답인 것처럼.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괜찮아?”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서준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그 말은 누구와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서준과 이서는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서준은 늘 이서에게 맞췄다.
“서준! 오늘 뭐 먹고 싶어?”
“이서씨가 좋아하는 걸로.”
“어디 가볼까?”
“이서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서준은 늘 다정했다.
이서는 그런 다정한 서준이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다정함 속에는 이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을.
마치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떤 관계이건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필사적으로 서준에게 매달렸다.
서준은 그런 이서를 말리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싫었다면 싫다고 말하면 됐을 텐데.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서준은 언제나 이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사소한 말에도 성의 있게 답했다.
그래서 더 알 수 없었다.
왜 자신을 곁에 두었는지.
왜 떠나라고 하지 않았는지.
서준은 끝내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서가 묻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고백하던 그날.
이서는 왜 되묻지 않았을까.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나를 만나도 괜찮아?' 라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모퉁이에서,
서준과 이서는 입을 맞췄다.
좋았는지, 슬펐는지.
이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안고 있었다.
태풍이 오기 직전처럼 고요했다.
서로의 숨소리 외에는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준이 자신을 마지막으로 안아주는 느낌이 났다.
서준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이서는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가까워졌다 싶으면 멀어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가도 닿지 않는 사람.
아무리 애를 써도 넘을 수 없는 선이
늘 서준과 이서 사이에 있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서가 원했던 것은 이런 거리가 아니었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서준의 목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이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준의 입술 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서는 알았다.
그 말의 의미를.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그 말은 곧,
이서가 원하는 그것만큼은 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결국 바라게 되어버렸다.
너의 마음을.
그리고 누구보다 감정에 예민했던 서준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응. 알겠어.”
이서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을 밀어내듯 몸을 떼어낸 뒤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늦었어.”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질문을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 버릴 것 같았다.
이미 시작된 태풍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무너져 있었다.
유서준과 강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예정된 결말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서는 숨죽여 울었다.
서준의 성격상 오랫동안 고민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늘 진심으로 답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서는 순순히 물러났다.
신기루에 손을 뻗는 일이 무의미하듯,
서준은 끝내 닿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
이서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마음까지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욕심이라고.
무례라고.
적어도 그때의 이서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허락된 것은 없었던 걸까.
친구라는 자리조차.
어쩌면 그것마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선이었을지도 몰랐다.
조금만 덜 좋아했다면.
조금 더 오래 곁에 머물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마음을 둔 사람에게
그 마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휴우-"
이서는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휴지통을 열어 서준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복원했다.
끝내 지우지 못한 사진.
이서는 한참 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서준에게 평생 다 갚지 못할 빚을 졌다는 것을.
서준은 늘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는 사람.
어떤 소문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 사람.
이서는 그런 서준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서준을 쫓으며,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조금씩 그려 나갔다.
서준이 왜 자신을 곁에 두었는지.
왜 끝내 밀어내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서준은 단 한 번도 이서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함께한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마주했다.
마음 둘 곳 없던 시절,
다정하게 이서의 이름을 불러주고,
쏟아지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가끔은 슬쩍 웃어주던 사람.
삶에 아무런 의지도 없던 이서가
다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
서준은 이서의 이상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었던 세계였다.
그 감정이 사랑이었든,
동경이었든,
혹은 그 사이 어디쯤이었든.
너는,
나의 구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