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를 시작하는 일.
작성해 둔 지 1년도 더 넘은 글을 (수정없이) 오픈합니다. 이 글은 온라인카지노에서 작가 승인을 받을 때 제출 했던 글이지요. 감사하게도 이 글을 읽고 작가로써 활동하게 해준 글이라 부끄럽지만.. 데헷.
나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경력단절 엄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흘러가는 일상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육아는 마치 마른 모래를 쥐는 일 같았다. 아무리 꼭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들. 언젠가 내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될 작은 등을 바라보며, 이유도 없이 자주 울곤 했다. 그렇게 쌓인 눈물 뒤로, 문득 나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역할 말고,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결혼을 핑계 삼아 10년 넘게 멈춰 있었다. 자격증 공부도, 마무리하지 못한 석사 학위도, 모두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말 뒤에 숨겨둔 채 살아왔다. 그 말은 스스로에게 건 벽이 되었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은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래된 먼지처럼 쌓여갔다. 그 먼지는 햇살 한 줄기만 스쳐도 부유하며 날아올랐지만, 나는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숨이 막히도록 답답해졌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일까. 그 질문이 나를 살짝 흔들었고, 그 작은 흔들림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물론 두려움은 여전했다. 10년이나 쉰 머리로 과연 공부가 될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잘 해냈다. 필기부터 실기까지, 6개월 만에 기사 자격증을 땄고, 수료로 멈춰 있던 석사 과정도 8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해내고 나니 기쁘기보다 허무함이 먼저 밀려왔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 나를 이렇게 내버려 뒀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텅 비어갔다.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는 집에서 TV 소리를 틀어두고, 시간은 무의미한 폰 게임으로 흘러갔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끝없이 되뇌었다. 그 말들은 빈 방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엔 폰 사진을 정리하는 공간 정도로 생각했다. 저장 용량이 가득 찬 폰에서, 버리기도 애매하고 저장해 놓기도 애매한 사진들을 올리고 삭제하는, 그저 정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가끔은 사용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루 많아야 한 시간 정도. 새로운 포스팅을 올리고, 몇 개 달리지 않는 댓글에 답글을 남기고, 답글을 준 이웃 블로그에 방문해 성의껏 내 생각을 전하는 정도의 루틴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이상하게도 블로그는 점점 내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빠져들 생각은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내가 남긴 글은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글로는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웃일지라도 상처받지 않도록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점점 부담이 커졌다.
이웃이 늘어날수록, 댓글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커지는 부담만큼 블로그에 매달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내 댓글이나 포스팅이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한 글자 한 글자에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아두고 있었다. 블로그와 현실 사이의 균형은 점점 무너져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와 배우자에게로 돌아왔다.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고, 정리되지 못한 집과 방치된 내 모습이 거울 속에 그대로 비쳤지만, 어쩐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매일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그곳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속절없이 블로그에 빠져드는 시간이 길어졌고, 현실 속 나는 점점 더 흐려져 갔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 블로그에 매달려야 했는지 이제는 안다. 꾸며진 모습이든 아니든, 오로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블로그였다는 걸. 아마도 나는, 블로그 안에서만큼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득인지, 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