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보다 맛있는, 순두부 쌀짬뽕

좋아하는 것을 지켜가는 일

by진정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음식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음식은 라면입니다.


꼬불꼬불 엉킨 면발부터 유쾌합니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면 제멋대로 풀려나오는 모양새가 재미있고,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꼬들한 식감도 좋습니다.


얼큰한 국물 위에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되고, 끓이는 사람과 넣는 재료에 따라 무한히 새로운 맛이 탄생합니다. 라면 한 봉지에는 간편한 한 끼 이상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아프기 전, 카레라면, 토마토라면, 해물라면은 물론이고 면을 부숴 만든 라면죽까지. 하루 세끼를 라면으로 채운 적도 있을 만큼 라면을 좋아했습니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 한 숟가락이면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라면은 내게 간편한 음식인 동시에 작은 놀이터였습니다.


상실의 자리에서 발견한 자연의 맛


예기치 않게 찾아온 병은 내 식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건강을 위해 자극적인 인스턴트식품과 밀가루를 멀리하기로 했습니다.


좋아하던 라면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아쉬웠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 이상이었습니다. 익숙한 즐거움 하나를 내려놓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내 삶을 조금 더 온전하게 돌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변화였습니다.


이따금 스트레스가 확 풀릴 만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간절한 날이 있습니다. 입안이 얼얼해질 만큼 매콤한 맛, 뜨거운 국물과 부드러운 면이 어우러지는 풍성한 한 그릇.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즐거움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그럴 때, 찾은 방법은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었습 니다. 고기 대신 채소와 버섯, 다시마로 맑은 채수를 우리고,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비건 쌀짬뽕입니다.


3분의 라면 대신, 천천히 끓이는 쌀짬뽕


예전에는 수프를 털어 넣고 3분을 기다려 간편하게 완성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도마 위에서 채소를 썰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냄비에서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립니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 사이 맛은 차곡차곡 쌓입니다.


신기하게도 강렬한 자극을 덜어내자 그동안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맛들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뭉근하게 끓인 무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단맛, 표고버섯의 깊은 감칠맛, 다시마가 더하는 묵직한 풍미. 별다른 양념을 더하지 않아도 재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 냈습니다.


건강을 생각한다고 해서 밍밍한 국수를 먹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좋아하던 음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내 몸에 맞는 방식으로 즐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튀긴 밀가루 면 대신 쌀국수를 골랐습니다. 올리브유에 매운 고춧가루를 볶아 얼큰한 향을 끌어올리고, 미리 진하게 우려 둔 채수를 부어 국물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여기에 채소가 가진 다채로운 풍미가 어우러지고, 부드러운 쌀면이 매콤한 국물을 머금습니다.



고기나 해물이 없어도 한 그릇을 충분히 풍성하게 채울 수 있었습니다.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볶고, 끓이는 동안 내가 원하는 맛을 조금씩 찾아갑니다. 고춧가루의 양을 조절하고 국물의 농도를 살피며 한 숟가락씩 맛을 봅니다. 정해진 수프에 뜨거운 물을 붓는 대신, 내 입맛에 맞는 맛을 직접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한 쌀짬뽕을 맛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 냈다는 만족감이 듭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법


이 음식을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 반드시 그 마음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아하는 맛을 되찾기 위해 재료를 바꾸고, 조리법을 바꾸고, 익숙한 음식을 내 방식대로 다시 만들어 보는 일. 그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미는 라면을 사랑했던 내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때로는 건강을 위해, 때로는 환경을 위해, 때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잃어버린 것만 바라본다면 삶은 온통 결핍으로 채워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까지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재료로, 다른 방법으로, 조금 느린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변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린 자리에 다른 즐거움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 지금 자연의 맛을 담은 요리바카라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삶이란 때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나는 냄비에 채수를 붓고 쌀면을 삶습니다. 붉게 번지는 국물에서 매콤한 향이 피어오릅니다. 한 숟가락을 맛보고, 고춧가루를 조금 더할지 잠시 고민합니다. 3분이면 완성되는 음식 대신 내가 원하는 맛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나를 돌본다는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 이런 작은 일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나는 그렇게, 나를 위한 쌀짬뽕 한 그릇을 끓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때, 반드시 그 마음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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