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채팅방'이 가져단 준 평온
한동안 상당한 두통거리가 있었다. 고등학교 반창회 단톡방이 있는데 한 명이 주구장창 혼자서 단톡방을 도배하기 때문이었다. 27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그는 그 방이 마치 자기 방인 양 하루에도 몇 개씩 신변잡기를 올렸다. 자기가 찍은 사진도 올리고 주워들은 이야기도 올리고 아무튼 혼자서 단톡방을 독점하고 마구 쏟아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단톡방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엉뚱한 자기 친구 이야기도 마치 사람들이 다 아는 듯이 올리는 것이었다. 반창회 단톡방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게 상식에 맞건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급기야 한 반창은 불쾌감을 참다못해 그에게 한마디 화를 내고는 단톡방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문제는 비난받은 당사자 본인이 그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분탕질을 견디다 못해 반창이 단톡방을 탈퇴하고 나간 것을 알지 못했다. 혹시 알면서도 그냥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 해도 문제고 알면서도 무시했다고 해도 문제인 건 마찬가지다. 알지 못했다면 지력, 분별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것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그 강심장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그는 거의 매일 혼자서 단톡방을 도배질하지만 그가 올린 글에 대해 대꾸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어쩌다 간혹 누가 이따금 반응하는 정도다. 놀라운 것은 거의 아무런 반응이 없음에도 매일 도배질을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박수를 쳐줘야 신이 날 텐데 그는 아무런 대꾸를 못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온갖 게시물을 올려 왔다.
공해, 소음 같은 글을 참다 못해 한 반창은 뛰쳐나갔지만 나가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어느 한 사람의 분탕질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단톡방을 나가자니 혹시 꼭 알아야 할 공지사항이 오를지도 모르고 그냥 있자니 매일매일 특정인의 도배질을 견뎌야 하니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조용한 채팅방이란 걸 알게 됐다. 단톡방 이름을 꾹 누르니 메뉴가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조용한 채팅방으로 보관'이었고 그걸 누르니 '조용한 채팅방'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조용한 채팅방'이 되고 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뜨던 빨강 숫자 표시, 즉 새 글이 올랐다는 표시가 뜨지 않게 됐다. 하루에도 여러 건, 한 달이면 100건 이상의 글을 올리는데 읽어봐도 와닿는 내용은 없다. 그런 글을 보지 않아도 되니 조용한 채팅방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카톡에 처음부터 조용한 채팅방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톡은 이미 국민 메신저가 된 지 오래고 내가 겪고 있는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카톡 측에서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려고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조용한 채팅방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법이 어딘가 있다. 왜 없겠나. 조용한 채팅방 덕에 보고 싶지 않은 글을 보지 않아도 되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내 스마트폰 생활에 평온이 찾아왔다.
나야 조용한 채팅방 덕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단톡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는 왜 단체 모임방을 자기 개인 공간으로 여기고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쏟아내고 있을까. 자기 딴에는 편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실제로 단톡방에는 그와 친한 몇몇 사람이 있기도 하다. 비록 대꾸는 아주 드물게만 할 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도배질에 염증을 느끼고 그를 못마땅히 여긴다. 도무지 와닿지 않는 이야기 듣기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맑은 정신을 갖기가 쉽지 않음을 새삼 절감한다. 치매는 먼 데 있지 않아 보인다. 남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곱게 잘 늙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