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의 노동

by해원

오래도록 우리 집에서 노동자는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쯤 입사한 온라인 게임에서 줄곧 30여 년간 일했다. 이토록 간단한 문장으로 그간 아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조금 애닳다. 내가 취업을 하고 슬롯에 나가 일을 해보고 나서야 그 문장 사이에 생략된 무수한 행간과 마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가족을 바카라임져야만 하는 노동자의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느릿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빠는 가장이니까, 아빠니까 우리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동생이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주말 출근을 한 아빠를 보기 위해 나와 동생은 아빠의 사무실에 갔다. 아빠가 일하는 곳은 시내 한가운데 고층 빌딩의 20층 사무실이었다. 오렌지빛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은 퍽 아름다워 어린 나의 눈길을 빼앗기 충분했다. 반짝이는 야경을 내려다보며 일하는 아빠의 모습도 덩달아 멋져 보였다.


나와 동생이 스스로의 삶을 바카라임질 수 있게 된 후로 그때의 기억을 회상해 본 일이 있다. 동생과 나는 같은 상황을 경험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 높이 솟은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꼈지만, 아빠의 현재를 나의 미래와 연관 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반면에 동생은 그런 아빠가 멋져 보여 자신도 나중에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아빠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한 꿈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회사원이 꿈이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빠가 회사에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내 눈에도 무거운 발걸음의 아빠가 종종 느껴졌는지 은연중에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원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와 회사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동생은 결국 둘 다 회사원이 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특출 난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적당한 회사에 취업을 했다.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겼다.


그렇게 회사원이 된 자식들의 노동이 이어졌다. 그때쯤 처음으로 아빠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날마다 반복되는 아빠의 출퇴근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 퇴근한 아빠가 왜 혼자서 가끔 술을 홀짝이는지 알 것도 같은 날들이 수일 지났다. 아빠를 따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4캔 만원하는 맥주를 사들고 와 혼자서 마시곤 했다.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며 내가 느낀 노동의 일면은 버티는 것이었다. 노동의 숭고함, 노동의 존엄성과 같은 말들로 일의 가치를 드높이곤 하지만 노동의 본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것이다. 다소간의 인내와 꾸준함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 아빠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니 오롯이 가족을 위한, 아빠의 길고도 우직한 노동에 존경심이 들었다. 아, 이 사실을 이제야 알다니. 나는 가끔 동생보다 한 발짝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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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이자 프리랜서입니다. 성장, 공간과 여행,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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